책 처분을 고민하다

하나의 일이 끝나면 다른 일이 입을 열고 나를 삼킨다. 일은 나를 씹어 삼키고 적당히 소화해선 배설한다. 그렇게 일에서 빠져 나온 나는 곧 다른 일에 먹힌다. 일테면 요즘 나는 매일 일정 세 개는 기본이고 일정이 너댓 개는 그냥 좀 바쁜 정도인 나날이다. 바쁜 게 문제가 아니다. 블로깅을 할 수 없어 아쉬운 게 문제다. 글을 쓸 수 없어 아쉽다. 글을 읽을 시간은 있어 다행이다!

이런 와중에, 이렇게까지 책을 사 모아서 뭐하나 싶었다. 이걸 다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고, 어떤 책은 평생 다시 안 읽을 건데 …. 책을 처분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고민 중인 처분 경로는 세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헌책방에 팔거나 그냥 넘기는 것. 판다면 적은 금액이나마 생활비에 보탬이 되겠지만 숨책이라면 그냥 넘기고 싶다. 워낙 고마운 곳이라서. 두 번째는 이곳 [Run To 루인]에서 착불로 무상배분하는 것. 세 번째는 아카이브에 기증하는 것. 세 가지 경로를 고민하는 건 책의 성격에 따라 처분할 방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여성학이나 섹슈얼리티/성, 퀴어 관련 기록을 꾸준히 모았다. 근데 그 중엔 개인소장보단 공공 아카이브에서 소장하는 게 더 나은 경우가 있다. 일례로 내겐 데니스 로드맨이 쓴 두 종류의 자서전이 있다. 하나는 한글로 옮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문이다. 그가 게이인지 크로스드레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자서전엔 퀴어와 관련해서 읽을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더구나 한글로 옮긴 책은 현재 절판. 몇몇 대학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지만, 한국의 대학도서관이 폐쇄적인 건 유명하니 이 책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아니,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다. 주제아카이브에서 소장하지 않는 한 기록이 사장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반드시 소장하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른 예로, 『역사의 사기꾼들』이란 책은 의료과학기술에서 발생한 오류를 다루는데, 비이성애, 트랜스젠더, 간성과 관련 있는 내용이 조금씩 있다. 퀴어나 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맞춘 책뿐만 아니라 조금씩 언급한 책도 여럿 모은 결과다. 근데 굳이 이 책을 내가 소장할 필요가 있을까?

책을 소장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어떤 기록을 필요로 할 때, 그 기록에 신속하게 접근가기 위해서다. 도서관이 있다지만 도서관개관시간은 때때로 기록에 접근할 수 없게 한다. 그것이 너무 불편해서 관련 기록들을 모두 모았다. 근데 모으다보니 소장해서 나쁠 건 없지만 굳이 내가 소장할 필요가 없는 기록들도 많더라. 어떤 기록은 독점하기보다는 공개하는 게 장기적으로 내게 도움이겠더라. 그 기록을 나 혼자 가지고 있으면 혼자 즐겁겠지만 충분히 활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래는 모른다지만 내가 데니스 로드맨 자서전으로 글을 쓸 일이 과연 있기는 할까? 잠깐 언급하는 일은 있어도 그의 자서전을 분석할 일은 없을 터. 하지만 그 기록을 자료로 멋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기록을 공개하는 게 결국 내게도 도움이다. ‘나 자료 이 만큼 있다’는 자족감은 공허할 뿐이더라.

다른 한 편, 몇몇 소설들은 아마 평생 다시 안 읽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과연 『일식』을, 『애니멀 크래커스』를 다시 읽을 일이 있을까? 혹은 『핫뮤직』 과월호를 굳이 내가 소장한다고 해서 다시 읽을 일이 있을까? 차라리 그 책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유통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방식이 어떤 형태건 간에 유통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더 이상 책을 둘 자리가 없어 이사를 고민해야 한다면 더욱더!

이렇게 작심했을 때 얼른 처분하면 좋겠지만, 나의 진로가 불투명해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긴 하다. 흐흐. ㅡ_ㅡ;; 진로에 따라 소장할 필요가 있는 책과 유통해도 무방한 책이 나뉘기 마련이니까. 더 큰 문제는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지 않는 이상, 선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렇게 쓰면 책이 상당히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단행본만 얼추 사천 권도 안 된다. 책 자체가 많은 건 아닌데 방이 8평도 안 돼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다;;;;;;;;;;;;;;;;;;;;;;;;;;;;;;;;;

내년 초까지 2/3 수준으로 줄이는 걸 목표로 하자!

+
사실 더 줄이고 싶고 굳이 소장하지 않아도 좋을 자료들이 더 있긴 하다. 처분 방법이 고민이라 망설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확 줄여야지.

6 thoughts on “책 처분을 고민하다

  1. 전에는 분양하시지 않았나요?
    + 표시에 책 목록이 있나 하고 클릭해 봤어요. ㅋㅋ

    1. 예전엔 겹치는 책을 분양했는데 이젠 다시 안 읽을 책을 분양할까 고민 중이에요. 흐흐. 근데 그렇게 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 착불로 할까 고민 중인데 조금 야박한 느낌도 드네요. 큭큭.

      그러고 보니 + 표시는 항상 more/less 같아요. 흐흐흐

  2. 4천권이면 충분히 많은 거 같은데요-ㅅ-;;
    난 독립하고 나서는 책을 바로바로 팔아서 거의 없는 듯; 본가엔 꽤 많았지만……

    1. 제 주변엔 2~3만 권을 가진 사람도 몇 있어, 사천 권 정도는 많은 축에도 못 드는 느낌이에요. 흐흐.
      책이 이사할 때 상당한 짐이라 이젠 욕심을 버려야 할 듯해요. 흑흑

  3. 와! 정말 책 많은데요! 전 (의외로??) 책 별로 없음 ㅋㅋㅋ

    1. 예전에 키드님 장식장에 CD와 장난감이 가득한 사진을 보고 얼마나 부러웠는데요!!
      키드님은 왠지 도서관을 애용하는 느낌이랄까요? 중요한 건 소장한 책은 적어도 몸에 쌓인 책은 많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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