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와 한국에서 자긍심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이야기하다가, 한국에서는 적어도 미국이나 서구에서 퀴어 프라이드라고 하면 나오는 그런 이미지와 의미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퀴어라서 너무 좋고 자랑스럽고 어쩌고 저쩌고. 미디어에 출연해서 요청에 의해 비슷한 말을 하거나 공적 자리에서 어떤 목적을 갖고 자랑스러움을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 말고, 개별적으로 그리고 실제 그 내용 구성에 있어서 적어도 미국 방식의 이미지나 의미와는 한국에서 만난 자긍심과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H가 묘사하길, 누가 퀴어라는 이유로 시비를 털면 “뭐, 왜, 왜, 어쩌라고”라고 말하며 간신히 서 있거나 뒷걸음질 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여기에 상당히 동의했다. 덧붙여 나는 누가 시비 털면 “뭐, 왜!”라면서 가장 빨리 도망갈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자긍심은 수치심, 부끄러움과 반대말이 아니고 서로 대립하는 감정이 아니다. 부정적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어도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의 태도를 고민해보면, 부정적 감정이 자긍심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이것이 어떤 객관적 증거에 따른 것이 아니고 그저 직감과 느낌에 불과한 것이지만. 어쨌거나 적어도 서구 방식의 자긍심을 기준 삼아 한국에서 자긍심을 논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맥이 맞지 않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고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