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ffis2007] 추가 예매

4월 5일 것은 수업의 일환으로 수업 듣는 사람들과 같이 보는 것. 그래서 별로 안 내키는 면도 있다. (특히나) 영화는 혼자 읽으러 가는 걸 좋아해서.

4월 8일에 하는 “대만 소녀 판이췬”과 “8월 이야기”는 살짝 망설인 작품. 특히 “대만 소녀 판이췬”은 왠지 믿음이 안 가서 조금 불안하지만 “8월 이야기”를 너무 읽고 싶어서 결국 읽기로 했다.

우울증

몸 안 혹은 몸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뜯겨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뜯어내고픈 바람에 앞서 그냥 통합하는 것이 편하다는 걸 알아. 애도 이후의 삶보다는 통합해서 합체하는 삶. 그저 이런 것이 익숙한 삶. 그러며 프로이트를 떠올린다. 이런 식으로 삶을, 감정들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를 알려준 프로이트에게 감사하면서도 문득 이런 우울증 구조 역시 기원서사에 토대를 두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우울증 구조 자체가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기원서사의 하나라면, 프로이트의 이런 설명을 빌려오는 버틀러의 우울증 구조는 어떠할까? (물론 프로이트의 우울증 구조부터 좀 더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 기원서사를 비판하는 버틀러는, 우울증 구조에 내재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기원서사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다시 확인해야 겠다고 느낀다.

몸 한 곳의 고통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건, 역시 INFP라서 그래, 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이 역시 성격 형성에 있어 환경이 미친 부분을 무시하고 그저 “난 원래 그래”로 슬쩍 도망가려는 행동임을 ‘안다.’ – 이런 말 역시 분석하고 있는 혹은 분석하려는 행동한다. 항상 이런 식이다. 그런데도 언제나 부족하고 어설프다.

며칠 전부터 계속 공부를 해도 되나,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 어쩌면 공부를 해도 괜찮아,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싶으니까 계속 해도 돼, 라는 말들 자체가 자기 환상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재능도 없고 능력도 없으면서, 루인은 대기만성형 인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공부를 하면 괜찮을 거야, 라고 자기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은 진즉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야하는 건 아닌지. 이런 고민과 함께 이런 고민은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이니까 여기서 그만 두지 말고 꾸준히 계속해, 라고 다둑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런 다둑거림 역시 자기위안은 아닌지. 새삼스럽게 현실을 구성하는 건 자기환상임을 ‘깨닫는다.’

슬픔의 경우는 빈곤해지고 공허해지는 것이 세상이지만, 우울증의 경우는 바로 자아가 빈곤해지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프로이트의 말이 떠오른다. 왜냐면 어떻게 되건 결국은 계속 공부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이정은 자신의 재능 없음을 한탄하는 유하에게 “그만 두기엔 너무 많은 시를 썼잖아”라고 얘기했다고 했나. 그러기엔 너무도 부족하지만, 결국은 계속할 거잖아.

블로그의 규칙

지금은 확인할 수 없지만, 스노우캣 예전 홈페이지에선, 그 유명한 대사 “내가 니 애비다.”란 말에 대한 여러 반응들을 그린 그림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중에 인상 적인 내용은, 게시판에 “다쓰 베이더가 내 아빠래요”라고 쓰는 것과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라고 반응하는 것.

블로그가 유행하고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블로그와 관련한 많은 기사들이 특집으로 다뤄지곤 한다. 그 중에서 어느 기사에선가, 직장상사에게 자신의 블로그를 들키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다. 괜히 직장 상사 뒷담화를 하는 얘기나 회사 업무와 관련한 내용을 썼다가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이유로 회사에서 잘린 사람도 있다고 했던가.

루인은 [Run To 루인]에 누가 들어오는지 거의 모르는 편이다. 아니 모르는 척 하는 편이다. 누가 들어오겠거니 대충 짐작 하기 보다는 이곳엔 검색로봇과 스팸의 구애 그리고 루인만 들어온다고 가정하고 글을 쓴다. 만약 누군가가 들어와서 이곳에 쓴 글을 읽는다는 걸 신경 쓰는 순간, 글을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읽을 거고, 저 사람도 읽을 거고… 라는 식으로 신경을 쓰다보면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가 없다. 이 구절은 그 사람을 향한 건 아니지만 괜히 자기 얘기라고 여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라도 하는 순간, 모든 문장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는 들어와서 읽으리란 걸 알면서도 (고마움을 표하거나 그럴 경우가 아니라면) 이곳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걸 모르는 척 한다. 아무도 안 들어온다고 가정하고.

하지만 [Run To 루인]은 거의 모든 검색로봇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고 애써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찾을 수 있는 공간이다. 루인에겐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글을 공개하는 순간, 각각의 글들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검색로봇에 걸리는 “웹페이지”일 뿐이다. 그러니 의외의 사람이 이곳에 온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더구나 메일을 쓸 때면 서명으로 블로그 주소가 나타나기에 메일을 주고받은 사람이라면 이곳을 온다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과 메일을 주고받을 때면, 자동서명으로 되어 있는 블로그 주소를 지우곤 했다. 알리고 싶지 않거나 알리기 조금은 난감한 상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알아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망설이게 하는 뭔가가 있는데, 일테면 선생님들과 메일을 주고받을 때, 잘 모르는 사라들과 메일을 주고받을 때면 반드시 지우고 보낸다. 일전에 키드님 블로그에서 “키드엄마”란 닉네임이 등장하여 키드님이 몇 시간 동안 문을 닫은 것과 비슷한 이유인데, 알아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알리기엔 망설이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성애 혈연 가족들과 메일을 주고받을 일은 없지만.)

그런데, 오늘 선생님(지도교수)께서 갑자기 사무실에 찾아와 얘기를 나누는데, 그 주제가 며칠 전 수업과 관련해서 쓴 글의 내용이었다. 즉, 선생님이 [Run To 루인]에 가끔씩 와서 글을 읽으신다는 것!!! 일시적인 패닉. 왜냐면 메일을 주고받을 때 일부러 블로그 주소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겨 둬도 들어오시지 않으리라 짐작했지만 남겨두기엔 조금은 망설이는 지점이 있어서 gmail로 메일을 바꾼 이후론 항상 지우곤 했다. (그 전 메일에 [Run To 루인] 주소가 남아 있었다.)

어떻게 할까, 혼자서 마구 흥분하다가 그냥 이렇게 쓰기로 했다. 흐흐. 왜냐면 이곳엔 검색로봇과 스팸의 애정공세와 루인 만이 들어온다고 여기지 않으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고, 이 상황을 여기에 글로 씀으로서 이 상황을 어떤 형태로건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이 상황을 문자 속에 위치지음으로서 이야기로 만들 수 있고, 그리하여 거리를 두고 읽을 수 있는 ‘사건’이 될 수 있고, 혹은 이곳엔 검색로봇과 스팸의 애정공세와 루인 만이 들어오는 공간으로 (다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환상일 뿐이지만, 환상 없이 현실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으며, 환상과 현실이 그렇게 구분 가능한 것이던가?

사실, 지금의 패닉과 흥분이 일상적인 반응인지, 선생님이기 때문인지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그 누가 [Run To 루인]의 글을 잘 읽고 있다는 얘길 해도, 이런 식으로 흥분하고 관습적인 자학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반응의 연장선 상에 있는 건지 모호하다. 다른 한 편, 잘 되었다는 느낌도 있는데, 오늘 같은 상황이 특히 그러하다. (내일 수업을 들어며 최종 결정을 하겠지만) 결국 수업을 계속 듣겠다고 고민을 하면서도 지속적인 갈등을 하기 마련이고 이런 고민 중에 선생님께 말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튼 스노우캣 방식으로 분류하자면, 게시판 형이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