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인사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헤어짐의 인사가, 반드시 만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만나요, 라는 의미라는 걸 깨닫기 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필히 어떤 약속을 잡지 않는 이상, 새로 만나기 위해 연락을 취하는 경우는 없었고 그래서 그 만남은 막연하고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것임을 알았다. 이 사소하고 작은 깨달음 이후, 이런 말은 관습적인 헤어짐의 인사라는 것을, 그러니 이런 헤어짐의 인사는, 우리 영원히 안 만날 수도 있겠어요, 라는 의미라는 걸 예감했다.

어떤 사람과는 헤어질 때 인사를 하지 않았다. 여러 명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헤어짐의 인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헤어짐의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건, 우린 만난 적도 없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지만 헤어짐을 말하고 싶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헤어진다는 말, 이렇게 한 순간이나마 헤어짐의 인사를 하기 싫어 그저 아무 말 없이 돌아서는 것. 이렇게 헤어진 이후 다시 만난 사람도 있고 역시나 영원한 시간처럼 만나지 않고 있는 사람도 있다. 연락이라도 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락처는 알아도 연락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연락처도 모르기에 그저 우연을 기대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스노우캣의 표현처럼(“hit the bottom“과 “detour“), 다른 것엔 몰라도 사람에 있어서 만은 포기가 빠른 루인인지라 특별히 연락을 먼저 하지 않는 편이다. 상대가 연락을 하면 고맙고 안 하면 그만이고. 마냥 이런 식이다. 어차피 우리는 헤어질 것을 알고 만나는 것이니까. 내일이라도 쉽게 만날 것 같은 사람도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젠 더 이상 만날 수 없겠구나 싶은 사람을 다음 날 다시 만나기도 한다. 알 수 없는 것이 헤어짐이고 만남이다.

J 몇 년 간 영원히 만날 수 없겠구나 하는 단념으로 지내다 우연히 연락이 닿기도 했고 그런 연락을 간신히 그리고 드문드문 이어갈 즈음 인터넷은 생성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짐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만남의 인사를 하기도 전에 헤어짐을 겪어야 했고, 하지만 사실 상 헤어진 적도 만난 적도 없는 그런 인연을 구성하기도 했다.

어차피 내일이란 시간은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는 막연함일 뿐이고 내일이란 시간이 어떻게 올지는 알 수 없으니까. … 그래서 그저 이렇게도 막연한 기다림을 반복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당신의 세상에서 잘 지내길…. 영원한 이별은 결국 아무런 이별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식의 말조차 이젠 부질없네. 언제 J, 당신 블로그가 일시 차단에서 풀릴 지 알 수가 없고, 이젠 그런 찾음도 부질없다고 느끼고 있어. 그저 건강해. 우리 언젠간 만나겠지요. 그러니 더 이상 만날 인연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조금 슬프지만 이런 슬픔은 익숙하니까. 당신을 만나길 바라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 정도는 이제 잘 알고 있으니까. 사랑해요.

#배경음악은 조용필의 “이별의 인사”

운세: 엽서

관련 글: 운명, 운세 그리고 구성

지난 월요일, 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던 지하철에서, 같이 갔던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활동가에게서 엽서를 선물 받았다. 마침 일행이 네 명이었고 그는 네 장의 엽서를 꺼내며 나눠 갖자고 했다. 루인은 망설임 없이 귀여운 아기 고양이가 나무에 올라가 있는 사진의 엽서를 골랐다. 고양이도 좋았고 나무도 좋았기에.

그 엽서는 그 활동가의 일본인 친구가 보내 준 것이었다고 했고, 그래서 일본어로 무슨 말이 적혀 있었다.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무리해서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하지 말라”였던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일 년 운세가 적힌 종이를 고른 기분이었다.

운세의 내용이 나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러니까 정말 나쁘다는 건지, 어떤 좋은 상황을 전제한 나쁨이란 건지, 그렇기에 “나쁘다”는 상황이 평상시의 상황이라면 나쁨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선 나쁠 수도 있지만 나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는 건지, 점을 해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쁘다는 거지 그 점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오히려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건지, 그러니 알고 보면 그 점을 듣는 사람에겐 상당히 좋은 내용인데 해석한 사람이 나쁘다고 해석한 것인지…. 이 모두일 수도 있고 어느 것도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쁘긴 나쁜데” 그것을 일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인다면 나쁘지 않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고, 지금은 그런 시기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엽서의 내용이 떠오른 건 이 지점에서 이다.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2월 달의 운세는 나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욕심이 언제나 뒷수습하느라 바쁜 루인을 만들 뿐, 만약 루인이 이번 달에 아무런 욕심도 안 내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적당히 빈둥거리면서 지내겠다고 다짐한다면, 이번 달 운세는 나쁜 것이 아니라 상당히 좋은 것일 수도 있다. 무리하게 높이 올라가지 않고 적당히 현상 유지만 하는 선에서(다만 이 “현상유지”의 기준이 제멋대로라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지내겠다고 다짐 한다면, 그렇게 계획을 세운다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시간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일테면 현재 루인은 두 개의 세미나와 현재 청탁 받은 글을 포함해서 쓰려고 계획 중인 글이 다섯 편이고 읽겠다고 욕심내고 있는 논문과 책이 쌓여 있는데, 여기서 책에 대한 욕심만 비워도 생활은 달라질 수가 있다. 어쨌든 글은 써야 하니까, 글 쓸 시간을 위해 책이나 논문을 조금 포기하고, 세미나는 무리해서 준비하지 말고, 가끔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나가는 시간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꽤나 괜찮은 한 달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모습으로 인해, 루인에게 일정 정도 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실망도 감당할 준비를 한다면, 다 괜찮은 걸.

혹은 저 운세라는 것이, 사실은 정말 저렇게 될 운세는 아니고 저 운세 내용에 신경 쓰다 보니까 운세가 말하는 내용처럼 된다는 의미였다면, 악착같이 부딪히면 될 일이다. 그러다 다치면, 또 다치는 대로 지내면 그만이다. 다치는 것이 두려우면 상처 받고 주는 일이 두려우면 아무 것도 못 하지 않나. (이 말을 하고 좀 찔린다;;)

… 이래저래 신경이 많이 쓰이나 보다. 2월 한 달은 누구도 만나지 않고 지내고 싶은 바람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니,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몇몇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면 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루인은 어쨌거나 현재 상황에서, 루인이 바라는 욕심과 현재 다가올 상황이 겹치는 공간에서 지내고 싶으니까. 그러니, 혹시나 이번 달 루인을 만날 일이 있는 분들은 혹시나 루인의 잔혹한 언어들(새삼?)에도 그러려니 여겨 주세요. 아니면 가급적 약속을 설 이후로 잡아 주시고요. 🙂

운명, 운세 그리고 구성

01
“해부학이 운명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성별/젠더 구분을 본질적인 것으로 여기고 이러한 구분과 이런 구분에 따른 억압을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해부학은 운명이 아니다”란 방식이었다. 하지만 “해부학은 운명이다”란 말이나 “해부학은 운명이 아니다”란 말이나 결국 같은 말이다. 둘 다 해부학과 운명에 동일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 다 해부학은 과학적인 사실로서 변할 수 없고, 운명 역시 타고난 것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니 “해부학은 운명이다”라는 말에 대한 의미 있는 비판은 “해부학은 운명이다”이다. 그리하여 당신이 사용하는 “해부학”과 “운명”이 내가 사용하는 “해부학”과 “운명”의 의미와 어떻게 다른지 경합토록 하는 것이다. 과학은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라 과학자가 살고 있는 사회 문화적인 맥락에서 해석한 내용이고 운명 역시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 내용은 “채식이 중산층 특권이라고?“라는 글에도 있는 내용.)

02
요즘 들어 운세에 예민해지고 있다. 고3 때도 듣지 않았던 운세를 올해 들어선 아주 작은 한 마디까지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루인은 한 편으론, 운명론자이고 그래서 이 운명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가 항상 고민이다.

루인은 금(金)의 아이임에도 흙이 4개나 있어서, 이 흙을 모두 파내야만 금을 구할 수 있다. 한때 천재에 혹했던 루인은 이런 대기만성 형 운명을 저주하기도 했다. 사주팔자로는 금의 아이지만 네 개의 흙에 묻혀 있기에 그 흙들을 파내야만 금을 구할 수 있는 운명. 이것은 분명 루인의 운명이다. 이것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이제 금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흙이 네 개이기에 포기할 것인가가 남은 과제이다. 대충 150살까지 산다고 치고 죽을 때까지 흙을 파서 금을 구할 지 말 지는 루인의 몫이다. 그렇기에 운명이라는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운명이라는 건 반드시 그렇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배웠고, 루인의 손금은 의지와 노력을 통해 운명을 만들어 간다고 나와 있다.

03
루인의 장점 중 하나는, 모든 사업을 없애는 것이다. -_-;; 그러니까 누군가 무얼 하라고 시킨다고 해서 반드시 하는 건 아니고 귀찮으면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듯이 무효로 만드는 것. 조교를 하면서 그렇게 없앤 사업들이 많다. 운세가 말하는 내용도 이렇게 하면 그만이다. 작년의 운세가 그랬고 그 운세에 대한 루인의 대처가 그랬다.

04
무료 인터넷 운세에 따르면 2월 달 운세가 최악이었다. 1월 말부터 시작해서 2월 중순 즈음까지가 최악이라니. 한동안 이 운명을 피할 길이 없다고 느끼며 우울해 했다. 만성우울이니 별로 신경도 안 쓰이고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어쨌거나 이번엔 좀 심각했다. 그렇잖아도 일 년 운세에 민감한 상황인데 최악의 내용이라니.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그저 조용히 숨어 지내는 것 외엔 별 다른 방책이 없어 보이는 운세라니.

며칠 전부터 이 운세 내용 때문에(그것도 무료로 한 내용임에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지금의, 올해의 몸이 이런 상태다) 주구장창 우울해 하며 어떻게 지내야 할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래, 어차피 운명은, 운세는 그렇다고 하니 그걸 피하거나 슬쩍 가지고 놀면 되겠구나.

운세라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이 비록 주어져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 좀 더 신경 쓰라는 정도의 의미라는 것을 배운 건, 고등학교 때 읽은 주역과 관련한 책을 통해서다. 주역과 관련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그 책에서 유일하게 지금의 몸에 남아 있는 내용은, 인생은 점의 내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점의 내용을 통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

그전까지는 운명이라는 것, 일 년 운세라는 걸 전혀 안 믿고 듣지도 않다가 듣기 시작한 계기가 이 한 마디였다. 일 년의 운명은 이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라는 식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루인의 인생은 끝없는 흙 파기의 연속이고 이런 과정 자체가 루인의 인생이다. 그러니 금을 발견하고 발견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금이 4개의 흙 속에 파묻혀 있다는 사주팔자의 말은, 그 금을 구해야만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금을 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일정한 패턴 속에서, 변화를 모색하면서도 여전한 인생. 그것이 루인이 살아갈 방법이다.

이걸 깨달았다.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인데, 깨달았다, 라는 말을 쓴다.

05
아무튼 운세 내용을 염두에 두고, 가방에 책 두 권을 챙겼다. 읽을 일이 생길지 안 생길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놀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