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니와 클로버: 사랑이라는 것. 청춘이라는 것

[허니와 클로버] 2007.01.12.금. 18:30. 스폰지하우스(시네코아) 1관 4층 A-57

1.
어제 낮과 오후엔 지도교수와의 세미나가 있었다. 일 대 일은 아니고 선생님께 논문지도를 받는 박사과정과 함께. 세미나가 끝나고 영화관으로 갈 준비를 했다. 며칠 전에 산 잡지에서 이 영화와 관련한 글을 훑어보며 곧장 극장으로 가고 싶은 바람을 품었기 때문이다.

2.
한국에서 주로 소비하고 있는 일본의 “청춘”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읽을 때면 종종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영화 내에서도 그렇고 그것을 소개하는 기사에서도 그렇고, 하나 같이 청춘이라는 것을 특권처럼, 뭔가 대단한 것처럼 여기는 내용들. 이런 식의 기술들이 불편한 이유는 청춘이라는 것이,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마치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청춘이라는 것이 그토록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건 자본주의사회에 살기 때문이고, 사실 청춘이라는 건 별거 아니다. 자기 생애에 걸쳐있는 한 지점일 뿐. 어떤 의미에서 청춘이라는 건, 그 시절엔 무엇이건 할 수 있다는 건, 특정한 기대수명을 가정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그래서 적어도 60살 이상은 살 것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25살이 마지막 생인 사람에게 20대의 의미는 무엇일까.

트랜스들의 삶을 연구한 한 보고서에선 젊을수록 더 많은 갈등과 고통을 얘기하고 나이가 들수록 좀 더 편하게 지낸다는 얘길 한다. 한국사회에서 나이는 거의 절대적인 권력과 동의어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이를 먹는다는 건 누군가의 간섭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도 장애, 계급 등과 관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트랜스들에게 젊은 나이의 변화 과정, 정체화 과정은 직장, 생계, 관계 맺음 등에 있어서 더 많은 거절을 겪기 마련이다. 물론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이런 경험들이 적어진다는 건 아니지만, 커뮤니티에서 20대는 젊다기보다는 여전히 ‘어린’ 나이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트랜스들에게 젊음은 특권일까? 청춘이란 건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수술이나 호르몬은 가급적 이른 나이에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구체적인 근거를 들은 적은 없지만. 짐작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나이가 들어 편해진다는 건, 물론 그 전의 많은 고민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나이 먹음에 대한 사회적인 의미와 동떨어져서 얘기할 수도 없다.

이 영화, [허니와 클로버]는 젊음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그래서 슬쩍 불편했다. 나이를 먹어도(이렇게 적으면 루인의 나이가 상당히 많은 것 같아 웃기지만) 고민은 계속되고 자기를 찾는 과정은 평생의 과정이다. “청춘”(“푸른 봄”이라는 표현 자체가 나이를 자연화/본질화하는 것이기도 하다)이나 젊음이란 것이 의미가 있다면 그 시절에만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서이지 그 시절이 특별해서는 아니다. 그 시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나이주의이다.

2.
어차피 대부분의 영화의 결론은 언제나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영화의 토대를 이루는 만화를 본 적이 없어 결론이 어떻게 날지 궁금하기도 했다. 살짝 두근거리는 몸.

조금은 심심하고 단조롭게 진행하긴 했지만 재밌었다. 연상을 좋아하는 마야마를 좋아하는 아유미. 좋아하는 연상을 스토킹하는 마야마와 그런 마야마를 스토킹하는 아유미. 이 관계가 더 흥미로웠다. 비록 하구미를 좋아하는 다케모토에게 좀 더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긴 하지만.

이건 아마도 이룰 수 없는 사랑, 이룰 수 없음을 알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좀 더 관심이 많은 루인의 경향 때문이리라. 루인은 이루이지는 사랑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재미있고 응원하는 관계라도 이루어지는 순간 관심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서다. 흐으;;;

3.
팜플릿 대신에 종이를 보관할 수 있는 파일을 준다는 점에서 다시 보고 싶기도 하지만 종로까지 나가기엔 너무 ‘멀다.’ DVD를 기대할까? 만화책을 구해야겠다. 후후.

목이 아프네..

자세 교정을 해야 할까 봐요. 뒷골 언저리가 뻐근해서, 오후만 되어도 의자에 기대어 목을 걸치고 있기 마련이죠. 그나마 글을 읽기만 하면 다행인데 단어를 찾아야 할 경우엔 거의, 태도 변화가 변화무쌍해요. 의자에 목을 기대고 반 즈음 누운 자세로 몇 문장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자세를 바로해서 단어를 찾다가 다시 의자에 목을 기대고 앉았다가;;;

일년 운세를 봤는데 믿을 수가 없어요. 운세를 보는 곳에 따라 내용이 많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1월 운세부터 그냥저냥 이네요. (이 문장을 쓰고, 불현듯 그 운세가 맞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원래 운세란 게 두루뭉술해서 해석하기 나름이지만요.) 하지만 건강 조심하라는 말은 들어야겠어요. 건강에 자부심을 느꼈겠지만 올해는 조심하라고 하네요. 예전에 적은 적이 있나요? 최근 10년 사이에, 알러지로 응급실에 실려 간 것을 제외하고는 병원 근처에도 안 가봤어요. 알러지성 비염이 아니면 별다른 감기도 없었죠. (암튼 알러지와 편두통이 관건이네요.) 그랬기에 이 말을 읽고 제일 먼저 한 몸앓이는, ‘잘 챙겨 먹어야겠다’였어요. 근데 지금에 와선 ‘자세교정을 해야겠다’로 바뀌었어요. 목이 아프니 종종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적으면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것 같아 당황스럽네요. 아침 8시 반 즈음 연구실에 도착해서 이르면 밤 9시 넘어, 혹은 10시나 11시 경에 玄牝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하곤 있어요. 하지만 이런 생활이 반드시 공부를 많이 한다거나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의미는 아니죠.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고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란 건 다들 아시잖아요. 🙂 그저 생색이나 내려고 연구실에 가선 죽치고 앉아 놀고 있어요. 예. 고백하건데 학교 사무실에 있으면 전기세도 아끼고 난방비도 아낄 수 있어서 가는 거랍니다. 🙂 이번에 한 달 치 생활비의 8%에 육박하는 가스비가 나왔는데 다음달은 더욱더 걱정이에요. 더 많은 난방을 해도 지난번에 살던 곳에선 훨씬 적은 금액이었으니, 보일러가 오래되어서 인 것 같아요. ㅠ_ㅠ

그러니 이건 순전히 루인의 습관 때문이에요. 사실 루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2005년까지 책상에 앉아서 지낸 시간이 별로 없어요. 수업이야 책상에 앉아서 들었지만 시험기간이라고 도서관에 간 건 아니거든요. 도서관 책상에서 공부를 한 건 수학전공시험이 있기 전날 정도랄까요. 루인은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보다는 이불 속에서 뒹굴면서 책 읽는 걸 좋아해요. 루인이 손꼽는 최고의 행복 중 하나는, 책을 읽다가 잠들어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서 계속해서 책을 읽는 거니까요. 어릴 때부터의 습관인지 아무튼 누워서 읽는 걸 좋아해요. 그렇기에 도서관에 가는 날은 거의 연례행사나 마찬가지죠. 흐흐.

이런 생활을 하다가 작년 일 년 간 책상에 앉아서 생활을 했더니 몸이 스트레스를 받나 봐요. 이불 속에서 뒹굴 거리는 걸 좋아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후후. 아무튼 자세 교정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니면 의자 대신 간이침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