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자 성별변경 등에 관한 특례법(안) 공청회 참석.

어제, 이 글의 제목과도 같고 며칠 전 올린 웹자보와도 같은 제목의 공청회에 참가했다. 반 즈음은 준비단이기도 했고.

그 내용이 어땠는지는, 생략. 하려고하면 할 말이 너무 많기 때문. 다만 몇 가지 지점만 요약하면.

#
엄청난 상상력을 지니신 박영률 목사님을 뵈었습니다. 아아, 감동이었습니다. 어떤 분인지 모르신다고요? 이런! 그럼, 대충 찾은 두 개의 기사를 참고 하세요.

性 바꿔야 사는건가 바꿀순 없는건가
“환영” “혼란가중”…성전환 법적 인정
대충 찾은 두 개의 기사에 대충 저 목사님의 말이 조금 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목사님의 그 무구한 상상력, 배우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그 학구열도 감동이었습니다. 6월 22일에 있은 대법원 판결을 과감하게 “한국 사법 사상 최악의 오판”으로 평해주시며 “어쩌다가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왔느냐”고 개탄하며 한국의 미래를 걱정해주셨습니다.

첨엔 웃다가 나중엔 웃을 가치도 없더라고요.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 정신분석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잠깐 생겼어요. 정신병이란 말이 아니고 저 양반의 정신을 분석하고 싶다는 욕망. 그러며 한 마디 하고 싶었죠. “사실은 당신도 성전환하고 싶은데, 차마 입 밖으로 말하기 두려워서,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 아냐?” 라고.

※기사를 검색하다 꽤나 골 때리는 기사를 발견했어요.
매니큐어 칠한 그대, 참으로 용기있네요

이런 기사를 쓸 수 있는 당신의 용기가 정말 가상해요.

#
박영률씨가 지적한 사항 중, 유일하게 유효하다고 느낀 부분은 노회찬씨의 행동. 이 공청회를 공동 주관했고 이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인사말 잠깐 하고 가버렸다. 어쩌자는 건지 의심스럽다. 나중에 법안과 자료집만 읽으면 된다고 간주한 것인지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건지(하지만 인사말에선 전혀 아니었다) 알 수 없지만 법안을 발의하겠다면 공청회자리를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엉뚱한 우려로 바뀌었다는 점도 재밌는 지점이다.

일전에, 공청회 토론자 중의 한 분인 변혜정 선생님과 만나 얘기를 나눴고, 후에 루인의 미간행 논문인 [트랜스/젠더 선언문 1/2]을 드렸는데, 사실 조금은 걱정했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 관련 글을 읽고도 자신의 위치보다는 그저 지식으로 전유하거나 엉뚱하게 사용하는 경우를 자주 접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선생님이 꼭 그럴 것이라는 건 아니지만 선생님의 위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위치를 밝히며 글을 쓴다고 하셨고 루인의 글을 참고한 글로 적는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쓰실까.

이건 약간의 불안이었는데, 사실 어떤 지점에선 변혜정 선생님의 사유와 고민에 동의하지만(때로 열렬히 좋아하지만) 때로 난감한 경우도 발생했기(과거형에 유의!)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발제문은 많이 궁금했다. 그런데 전혀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툭, 터놓고 말하면, 법안을 같이 준비했다고 하고 이번 공청회에서 법안을 발제한 윤현식씨를 비롯해서 토론자까지 총 8명 중에서 단 두 명만 지지할 수 있었는데 그 두 명 중 한 명이 변혜정선생님이었다. (다른 한 명은 이승현 선생님. ← 토론자로 참가한 분에 대한 예의상의 존칭. 즉, 친분이 있는 사이란 얘기다. 흐;;;) 그리고 법안이 의심스러워졌다.

재미있었던 건, 토론자 상당수가 변혜정선생님의 문제제기를 잘못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 토론문에서 인용하면, “그렇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젠더를 실천하는 자들, 성전환자라는 주관적 요소와 의학적 판단 기준은 항상 만나는가? 만약 만나지 않는다면 누구의 판단이 우선인가? 또한 제 3조의 1항의 의사 2인 이상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의사인가?”라는 문장과 토론 중에, 수많은 기준 중에 왜 의학적 기준이어야 하는가, 라는 말을 “그렇다면 의학은 필요 없거나 안 중요하다는 의미냐”로 받아들이는 모습들은 당혹을 넘어 의심을 일으켰다. 이 지점에서 양현아선생님은 섹스는 몸이고 그러니 의학은 중요하다는 발언을 하셔서 그간의 이미지가 깨지기도 했다. 꽤나 괜찮은 줄 알았는데.

변혜정선생님의 문제제기는 의학이 필요하다, 아니다, 의학기준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의학의 역사적이고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질문하지 않고 그렇게 함부로 권위를 부여해도 되는가, 이다. 의학적 판단에 전적으로(사실 상 “전적”인 것으로 여겨진) 기대어 판단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였다. 이 지점을 질문하지 않고 트랜스/젠더의 정치적인 지점을 말하기 어려운데 그렇게 쉽게 의학에 기댄다는 건, 당혹스러웠다. 물론 여기엔 의학과 근대국민국가의 밀월관계에 대한 질문을 함의한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나중에 들었긴 했지만) 발제자인 윤현식씨의 국민국가에 기대는 발언들(“트랜스젠더 기본법이라도 만들자는 것이냐”, 이 법안의 내용 정도가 현실이다, 라는 뉘앙스의 발언들)과 자기는 다 안다는 듯한 태도, 자기가 모르는 트랜스의 현실은 현실이 아니며 없다, 란 식의 태도는 불쾌를 넘어서는 행동이었다.

변혜정선생님의 우려는 너무도 절박했다. 현재의 법안엔 생식능력이 없을 것(제3조1항2호: 의료체계에 들어 갈 것)과 혼인관계에 있지 않을 것(제3조1항3호: “정상가족”이란 환상을 깨지 말 것, “정상가족”을 위협하지 말 것, 절대 ‘이성애’자로 있을 것)과 같은 요소들은 트랜스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며, 발목을 잡고 호적정정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할 위험이 있다. (지금의 법안 자체만으로도 트랜스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건, 변혜정선생님의 지적.) 이런 지적은, 90년대 초반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할 당시부터 참가했던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당시의 “양보”가 결국 발목을 붙잡고 있는 현실. 그것에 기반 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문제제기는 “급진적”인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목소리를 “급진적”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수구, 보수”인 셈이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인 셈이다.

#
그 외에도 재미있거나 화난 흔적들이 많지만 생략.

단, 마지막에 한채윤선생님이 플로어에 있는 토론자로 참가하며 지적했던 내용들은 열광 그 자체!

기쁨

멋진 선물을 받았다. 해바라기 꽃 모양의 친환경수세미. 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수세미. 너무 기쁜데, 딜레마가 발생했다. 얼른 사용하고 싶은데, 너무 예뻐서 차마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 으흑.

너무 고마워요. 조만간에 작심하고 사용할게요. 하지만, 아직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몸이랍니다. 헤헤 ^^

준비: 방학 동안의 변화

성전환자인권연대 발족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하다보니 이렇게까지 와 있다. 이런 위치에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스스로에게 커밍아웃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러고 나서도 무엇을 커밍아웃한 것인지 애매했다. 성적 지향성을 커밍아웃한 것인지 성별 정체성을 커밍아웃한 것인지 불확실했고, 성적 지향성만 커밍아웃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언어가 부족했다.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언어의 부재. 아니다. 단순히 부재한 것이 아니다. 몸이 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한 상태였다. 그래서 트랜스라고 자신에게, 그리고 여기 [Run To 루인]에게 커밍아웃하기까지 또 한 번,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커밍아웃을 하고도 언제나 불안했다. 루인의 애매한 위치-어디에서도 애매하게 자리 잡고 있는 위치가 주는 모호함. 불확실함. 이런 과정에서 언어를 모색하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몸으로 바꾸는 시간을 거쳐 왔다/거치고 있다.

지난 퀴어문화축제의 TG수다회는 확실히 좋은 기회였다. 그 자리가 일종의 전환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미나에 참석하고 어떤 기획팀에 참석하고 이제 성전환자인권연대 발족위에 참가하고 있다. 순식간의 일이다. 일 년 전, 아니 한 달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었고 방학 계획에는 전혀 없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일어나고 있고 몸이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 않겠다고 했던 일들을 할 수도 있고 그래서 한 달 뒤에 또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계속 변해가고 있다.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