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

발화하다.

글을 쓰다가 루인은 “말하다”란 표현보다 “발화하다”란 표현을 더 좋아하고 그래서 상당히 자주 사용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자어를 별로 안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발화란 표현은 너무 몸에 든다. 이중적인 의미 때문이다.

發火: 불이 남
發話: 입을 열어 말을 함. 말을(이야기를) 꺼냄.

(엠파스 국어사전)

바로 이런 이유로 발화란 단어가 좋다. 입을 열어 가두어 둔 언어를 드러낸다는 건, 금기시 되었던 욕망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를 가졌다는 의미면서 동시에 언어를 표현하는 찰라 자신도 모르게 그간 억압하고 있던 욕망들이 불에 타오르듯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냥 몸속에만 굴렸을 땐 정리가 잘 안 되던 몸앓이들도 글이나 또 다른 표현 수단으로 드러내는 순간, 정리가 되고 미처 깨닫지 못하던 내용들도 알게 되는 경험이 있다. 잘 몰라서 누군가에게 질문하려고 몇 마디 꺼내는데, 그 과정에서 “아!” 하고 깨달은 적도 있다. 루인에겐 발화란 단어가 이런 순간을 잘 포착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좋다.

두 개(혹은 세 개)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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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 기존의 어떤 모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글이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 하고 있는 그 모임은 채식주의 페미니즘 모임이다. (아, 시작한지 3주가 되었으니 모임 이름이라도 지어야 하나.)

준비 모임을 빼면, 두 번의 세미나를 하며 세미나라기보다는 즐거운 대화 모임이라고 부르고 싶다.

채식(주의)자마다 시작의 동기가 다르고 실천하는 방식이 다를 텐데도, 의외로 많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알아가는 건, 힘이 되는 일이다. 루인(의 성격)이 이상해서 혼자만 겪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겪는 현상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모임을 가지며 좋은 건, 혼자라는 고립감과 외로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하고 발화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그것을 서로 지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루인에게 이랑이 소중한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안다. 비슷하거나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그런 공유만으로도 즐거운 건 어느 순간까지라는 걸. 모임을 지속하기 위해선 또 다른 단계가 공존해야 한다. 그래서 나무님의 발제문 마지막 구절 중, “채식과 언어의 관계”모색은 무겁게 다가왔다. 언어를 모색하는 과정이 오래 걸리고 그래서 때로 지칠 수도 있다고 예감하지만 그래도 즐거울 거라고 몸앓는다. 왜냐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할 것이니까. 이런 고민의 많은 지점들은 혼자 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혼자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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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소중한 세미나는 이랑의 세미나. 문제가 발생했다. 이랑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루인에게 발생했다;;; 현재 세미나용으로 읽고 있는 책이 너무너무 재미가 없어서 듬성듬성 읽고 있다는 것-_-;; 작년에도 한 번 했던 책을 다시 하는 건데도 여전히 재미없고 종종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ㅠ_ㅠ

몇 주 후면 루인이 발제를 해야 하는데, 아마 설렁설렁 읽고 발제문을 쓰는 “희대의 사기극”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_-;;; 아아, 그러니 지금 이 글은 그때 가서 놀라지 말고 미리미리 몸의 준비를 하셨으면 한다는 부탁 혹은 행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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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두어 번 모임을 가지곤 흐지부지되었던 또 하나의 모임이 있다. 그 모임의 카페에 모임을 다시 시작하면 어떻겠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설렌다. 정말 시작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별로 없지만, 정말 하게 된다면 그곳 구성원들 또한 멋진 분들이기에 설레지 않을 수 없다.

공동육아 단상..

처음 루인이 공동육아란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린 건 루인의 어린 시절이었다. 루인의 과거를 공동육아의 개념으로 떠올릴 수 있었던 건, 다른 맥락의 어떤 글을 읽으며 그렇게 정리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글은, 비’이성애’자, 이반queer 가족이든 ‘이성애’ 가족이든 상관없이 고립된 가족 중심의 문화 보다는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꾸려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좁혀서, 레즈비언 커플이나 게이 커플이 양육하면 아이들에게 별로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비난”(사실 상 공포)들이 있는데, 이런 비난에 동조하는 내용이 아니다. 가족이 ‘이성애’ 가족이든 비’이성애’ 가족이든 상관없이, 마을 공동체를 통해 아이가 여러 계층과 나이대의 사람들을 접하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70대 ‘여성’과 접하며 소통하는 경험을 갖는 것, 40대 백수 ‘남성’과 낮 시간에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경험, 가게 주인에게 때론 혼나면서도 동생들 데리고 잘 놀라며 과자를 받는 경험 등이 있는 것은 이후 중요한 경험,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의 글을 읽으며 루인은 곧장 루인의 경험을 떠올렸다. 아주 어릴 땐 주택가에서 살았고 초등학생 시절엔 아파트에서 살았던 루인은 두 곳 모두에서 이성애혈연부모에 의한 종일 보살핌(혹은 관리?)에 있지 않았다. 동네에서 놀고 있으면, 구멍가게 주인이 가게를 보면서 동네 아이들을 같이 챙겼기 때문이다. 굳이 구멍가게 주인이 아니어도 동네 사람이라면 지나가며 항상 동네 아이들을 챙겼다. 누군가 다치면 근처에 있는 어른이 와서 보살폈기에 굳이 이성애혈연부모가 같이 있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물론 젠더화된 현상은 있었지만, 어머니만이 자식에 대한 유일한 양육 책임이 있다는 억압이 지금과는 달랐다. (맞벌이에 대한 요구가 커질수록 양육에 대한 어머니만의 책임이 강조되는 건 의미심장하다.)

주택가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 즈음 하교를 해서 집에 돌아가면, 아무도 없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때면, 옆집 혹은 위층의 “아줌마”가 밥을 챙겨주곤 했다. 이로 인해 초등학교 2학년 즈음부터 계란을 굽고 밥을 챙겨먹는 ‘간단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점심때 부모님이 아무도 없다고 해서 그다지 걱정할 일은 없었다. 동네에서 놀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루인의 경험은, 이성애가족제도의 아버지/남편=생계부양자, 어머니/아내=전업주부란 식의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루인의 엄마는 취직을 한 적은 없지만 전업주부는 아니었고 루인이 살던 동네의 거의 모든 집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루인의 기억 속에 ‘여성’들은 중요한 그리고 항상 생계부양자이다. (생계부양자로서의 남편, 전업주부로서의 아내란 젠더역할은 판타지일 뿐이다. 한국에서 전업주부는 10%도 안 된다. ‘여성’/어머니/아내의 노동을 부업이란 식으로 불렀기에 비가시화 되었을 뿐.) 그렇기에 나이든 노인들이 한 곳에 앉아 얘기를 나누면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살피는 식이었다.

루인은 이런 경험을 공동육아로 해석하고 있었기에, 공동육아를 교수나 의사처럼 자기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고 경제적 기반이 되는 중산층들만의 일이란 말에 당황했었다. 공동출자를 해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다는 말에 얼마간의 당혹감도 있었다. 도대체 어떤 공동육아를 계획하기에 중산층은 되어야 가능하다는 거지? 그렇기에 루인이 상상하는 공동육아는 친한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 살아가는 것뿐이다. 누군가 바쁜데 마침 바쁘지 않은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가 아이들을 챙겨주는 정도. 모두가 바쁘면, 또 그런대로 아이들은 생활할 수 있기에 별다른 걱정이 없는 생활. 아이들 곁에 항상 어른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착각이다. 아이들끼리도 아기들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육아가 또 다른 노동이 되고 대안교육이 또 다른 사교육이 된다면 무엇 하겠냐고.

그런데, 루인이 오랜 산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20년 조금 더 산 것 뿐인데, 이런 경험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무슨 동화 속 얘기나 되는 것 같고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