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

어쩐지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주 채식짜장을 사먹었는데, 맛은 있지만 만족도가 떨어졌다. 뭔가 아쉬운 느낌. 뭔가 부족한 느낌. 그래서 E와 함께 다음 주 일주일 동안 먹을 양식으로 짜장을 만들었다. 더 정확하게는 오늘부터 다 먹을 때까진 짜장이다! 짜장면과 짜장밥의 연속이겠지. 그런데 참 이상하지. 짜장 전문점에서 먹는 것보다 직접 만든 짜장이 더 맛있다. 자랑이 아니라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도대체 왜일까…

어려운 일

규범을 비판하는 것이 규범적 삶을 지향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규범적으로 살고 있거나 조금도 규범을 위반하지 못 하는 것처럼 인식(오인)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너무도 자주 이렇게 오독될 때 곤란함과 답답함을 느낀다. 규범을 비판함은 규범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비판하는 작업이지 개개인을 비난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나면 또 답답하다. 이것이 규범적 삶을 살거나 그런 삶을 지향하는 사람에게 어떤 식의 ‘면책의 권리’ 혹은 ‘면책의 빌미’를 제공함도 아니다. 이럴 의도는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규범적 삶을 지향하는 사람의 어떤 정치적 책임까지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규범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작업은 비규범적으로 산다고 믿는/여기는 사람부터 규범적으로 산다고 믿는/여기는 사람 모두가 각자의 정치적 책임을 사유할 것을 요구한다.

어려운 일은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것을 정말로 실천하는 것이다.

트랜스규범성 transnormativity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트랜스규범성(transnormativity)을 이야기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아직 영어 사용자를 중심으로 한 학제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를 하고 있진 않다. 이성애규범성이나 동성애규범성에 비추어 더 조금 뻔한 측면이 있다고 느끼는 것인지, 복잡한 감정으로 머뭇거리는 건지 확실하진 않다. 트랜스젠더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규범적 존재, 기존 질서를 강화하는 존재란 비난과 함께 하기에 트랜스규범성을 말하기는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일전에 <특종 헌터스>에서 보도한 트랜스젠더 관련 영상을 봤다. 내가 잘 몰라서 배울 내용도 있으니 괜찮았다고 평가 하고 싶다. 하지만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특종 헌터스>에 등장하는 트랜스젠더는 모두 mtf/트랜스여성이며 의료적 조치를 하고 있고 때때로 호적 상 성별 변경도 원하거나 이미 호적 상 성별 정정을 했다. 또한 매우 여성스러워서 ‘여자여자’한 느낌이다. <특종 헌터스>에 등장하는 mtf/트랜스여성의 모습은 여타의 미디어에 등장하는 트랜스젠더의 이미지/재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이미지가 한국에서 주로 소비되고 논의되는 트랜스젠더의 모습이다. 그럼 미디어를 비평하면 되는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눈팅만 하는 트랜스젠더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모습과 매우 닮은 욕망이 흐른다. 다들 호르몬 등 의료적 조치를 원하고, 의료적 조치 경험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고민하는 사람에게 의료적 조치를 적극 권하며 이것이 중요한 해결책처럼 말하기도 한다. 물론 회원 개개인의 맥락에선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어떤 경향성에선 특정 규범이 존재한다. 흔히 ‘트랜스젠더라면 이렇게 살겠지’라고 여기는 삶과는 다른 방식의 삶은 배제되거나 무시되는 경향 역시 존재한다.

트랜스젠더가 의료적 조치를 원하고, mtf/트랜스여성이 여성스럽게 행동하며, ftm/트랜스남성이 남성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규범성이라고, 이성애규범적 실천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트랜스젠더를 비난하는 것은 삶의 맥락, 정치적 위치성 등을 조금도 사유하지 않는 태도거나 사유하더라도 어떤 부분에서 실패한 태도다. 이것과는 별개로, 커뮤니티 차원에서, 그리고 삶의 실천에서 트랜스젠더의 트랜스규범성이 형성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트랜스규범성이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부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규범성이 불편한 나는 트랜스규범성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나의 갈등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논의 지형이다.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논의는 현저하게 부족하다. 부족하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고, 사실상 전무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매우 적은 수의 논문이 출판되고 있고 그 중 상당수는 법학 논문(판례 분석 논문)이다. 트랜스젠더의 삶, 트랜스젠더 이론, 트랜스젠더 정치학과 관련한 글은 너무 적어서 전무에 가까운 수준이다. 지금 트랜스규범성을 논하기엔 그 논의의 토대가 되는 논의 지형이 없다는 뜻이다. 트랜스젠더 정치학의 이론적 논의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트랜스규범성을 비판하는 글을 낸다는 게, 어떻게 보면 매우 뜬금없다.

그럼에도 트랜스규범성을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한다. 트랜스규범성을 비판하는 글 역시 트랜스젠더의 삶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개개인의 만남에서 나타나는 규범성에 불편함을 느끼며 조용히 커뮤니티를 떠나는 사람들, 말을 아끼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다양한 매체에서 비판하지만 그것이 충분히 맥락화되지 않고 그냥 개인의 불평으로 취급되는 상황이 존재한다. 동시에 어떤 실천이 주로 이야기되면서 내부에서 나타나는 복잡하고 변태적인 삶의 양식이 모두 누락되거나 배제된다. 그러니 트랜스규범성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언제,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누가 해주면 더 좋겠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