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많이 피곤하지만 다시 제 일상을 유지해야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어머니의 수술은 끝났습니다. 잘 끝난 것일지는 회복 과정을 지켜봐야죠. 수술이 목표로 한 부분은 잘 끝났습니다.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잘 끝났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회복 과정을 거쳐야 수술의 효과를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죠. 그러니 좀 더 기다려봐야죠.
뇌 수술을 하고 나면 성격이 변한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뇌와 성격의 관계가 매우 밀접하다는 얘기죠. 뇌가 성격을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뇌와 성격 사이엔 강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성격은 뇌가 결정하니 어쩔 수 없다는 얘기를 해선 안 된다는 뜻이지만, 뇌가 성격에 영향을 끼치면서 때론 어쩔 수 없는 일도 생긴다는 뜻. 모순 같지만 모순은 아닙니다.
댓글로, 개별 연락으로 안부를 물어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태블릿으로 블로깅을 하다보니 댓글에 답글을 못 달았네요. 좀 정신차리고 답글 달게요.

이런저런 잡담

어머니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저를 처음 보고는 잠시 당황하다가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여자인 줄 알았다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냥 좋아할 순 없었지만 속으론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선생님, 눈썰미 짱이에요! 그나저나 머리카락 길이는 정말 짧았는데 어떤 점을 포착한 걸까요.
형제자매도 좋고 자식도 좋고 친척도 좋지만 친구란 관계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 각별하다는 느낌입니다. 친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요. 가족이 울 수 없는 상황에서 울 수 있고, 다른 누가 타박하고 구박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친구는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요. 네, 친구란 정말 소중해요. 그리고 이런 친구를 갖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이런 친구가 있다는 점에서 어머니의 삶은 성공적인지도 몰라요. 훌륭한 삶을 살아오셨고요.
병실에서 하루를 지내며 일일 드라마를 몇 편 봤습니다. 저녁 8시부터 여러 편을 본 것 같은데.. 뭔가 비슷비슷한 느낌이라 몇 편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암튼 일일 드라마를 보며 깨닫기를 정말 다들 연애를 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제가 본 드라마의 모든 인물이 연애를 하고 있거나 작업 중이더라고요. 연애가 아니면 이야기를 못 끌어가는 걸까요? 이성연애가 아니면 할 얘기, 공중파의 얘기가 없는 걸까요? 정말 궁금했어요. 뻔한 연애 얘기를 왜 그렇게 반복해서 보는 건지..

머리카락을 자르다

중학교는 남녀공학에 사복이었지만 두발은 자율이 아니었다. 너무 짧지 않게, 하지만 1cm였나 3cm였나,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야 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나는 늘 가던 이발소에 갔고 머리카락을 잘랐다. 바리깡 기기가 진동하며 머리의 피부 위에서 진동했다. 칼 혹은 기기가 머리 피부에 직접 닿는 순간이었다. 머리카락은 순식간에 잘렸다. 머리카락이란 이렇게 가냘픈 것이구나. 쉽게 잘리는구나. 거울 너머에서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낯선 사람을 마주하면서 많이 어색했다. 그리고 정말 내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머리카락 길이로 사람을 규율하는 한국 사회, 여전히 중고등학생의 두발 자유화는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일종의 의례이자 상징이다. 머리카락을 다 자르고 물에 풀어서 사용하는 면도크림을 머리와 목 둘레에 발랐다. 면도칼이 머리와 목을 지나갔다. 서늘함. 물론 입학할 때까지도 입학하고 시간이 좀 지나서도 중학생이란 실감을 제대로 못 했지만 머리카락을 자르는 그 순간만은 구체적이고 생생한 순간이었다.

어제 저녁 뇌수술을 앞둔 어머니가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야 했다. 뇌수술을 하는 모든 사람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머리카락을 잘라야 했다. 이발소에 가지 않은지 오래고 이발소가 없어지고 있다는 얘기만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발사의 전형 같은 사람이 왔다. 그리고 복도 한쪽 끝에서 자리를 잡았다. 머리를 이런 곳에서 잘라야 하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그 당시엔 그럴 정신이 없었다. 이발사는 바리깡으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약했다.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바리깡이 머리카락에 걸려 잠시라도 멈추는 일은 없었다. 가볍게 가볍게. 바리깡으로 머리카락을 다 자른 뒤 이발사는 면도크림을 물에 풀었다. 그리고 머리 전체에 면도크림을 발랐다. 이 순간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랬지. 뭔가 낯설고도 익숙한 느낌.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내내 어머니는 간신히 참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울진 않으셨다.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면도칼이 짧은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하면서 참고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뇌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그리고 매우 구체적으로 실감하신 듯했다. 병원에 입원할 때도 기운이 없고 눈물을 흘렸지만 머리카락을 자를 때완 다른 느낌인 듯했다. 머리카락이 잘린다는 것은 내일 아침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입원보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순간이 더 구체적 사건이었다. 수술이 몸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병실의 밤은 어두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