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년 만에-_-;; 다방에 가서 음악을 올리고;;; 메인화면을 보다가 문득 이상하다고 느끼고, 뭘까 했더니, 블로그 이름이 안 보인다. ;;; 예전엔 “변태고냥 J의 나비날기”라고 블로그이름이 뜬 거 같은데, 지금은 포스팅의 제목, 즉 올린 가수와 노래 제목만 제일 위에 뜬다.

↑이렇게;;

explorer7을 설치해서인지, 아님 블로그 스킨 에러(손도 안 댓는데;;)인지는 모르겠다.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는 현재의 상황은, 지금 이 상태가 더 예뻐 보인다는 거-_-;; 단순한 걸 좋아해도 그렇지 단순한 걸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몰라. ;;; 흐흐. 그래서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보이면 좋겠고;;; 버그라면 버그인 상태로 지속되면 좋겠다. 흐흐흐

각별한 느낌: KSCRC

2005년인가,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이 즈음이라고 기억한다. 그해 2월인가 3월 어느 날, 어떤 단체에 매달 1만 원씩 10년간 자동이체를 신청했다. 통장이 살아 있는 한, 평생 자동이체를 신청하고 싶었지만 그 단체엔 CMS가 없었기에 자동이체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자동이체를 신청하기 까지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 이 고민은 단순히 어떤 단체에 후원금 혹은 회비를 내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고민은 몸이 경험하고 있는 긴장과 갈등이었다. 이른바 “정체성”과 관련한 고민이었다. 이때 고민은 “나는 트랜스젠더인 거 같은데, 정말 그럴까? 나를 트랜스젠더로 설명해도 괜찮은 걸까? 혹시 나는 ‘가짜’인데 트랜스젠더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였다. 이런 이유로 애증이 교차하는 연예인이 하리수다. 하리수가 봉인을 풀었지만, 하리수 덕분에 “하리수 같아야만 트랜스젠더”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방송을 통해 나타나는 하리수와 루인은 달라도 너무 달라 불안했다. “나는 트랜스젠더일까? 나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정확하게 이런 식으로 고민하진 않았지만, 대충 이런 식으로 고민했다. “가짜”일까봐, “가짜라는 의심”을 받을까봐, 불안했다. 지금도 이런 불안이 없다곤 못 한다. 어떤 자리에선 지렁이 활동가란 걸 다들 아는 자리에서도, “트랜스젠더”라는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자기 불안과 자기 의심 속에서도 조금씩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렇게 자신에게 “커밍아웃”하면서, 회원으로 가입하고 자동이체를 신청했던 곳이 그 단체, KSCRC(이하, 센터)다. 그러니까, 일종의 자기긍정의 한 방식이자 확인이라는 의례랄까, 반드시 이렇지는 않아도 나름 중요한 의미와 상징이 있다.

이렇게 각별한 곳에 요즘 종종 가야할 일이 있어, 들리곤 한다. 물론 거의 대부분이 출판과 관련한 이유에서지만, 그래도 갈 때마다 감회가 새로울 때가 있다. 그런데, 오늘은 무려 밥도 먹었다. 센터의 전기밥솥으로!!! 아아, 말로는 표현을 못 했지만, 뭐랄까, 아아, 정말 뭐랄까…. 흐흐. 뭔가 엄청 즐거운 기분이란 건 분명하다.

+
그러고 보면 언제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남들이 나를 부정하지 않을까? 나는 경험했고 느끼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런 경험과 감정들을 가짜나 뭔가 아닌 거라고 부정하지 않을까?”하는 불안이다. 취약한 인간의 한 특징으로 취부하고 싶어도 쉽지는 않다. -_-;; 흐흐.

++
추가로 기록할 수준의 사항은 아니지만, 아무려나 오늘도 무지개 건널목 시위는 무사히 끝났다. 사실, “날 연행해가!“와 “이거 왜 이래! 나 불법시위 중이야.“(이건 [타짜]에 나온 김혜수의 억양으로, 흐흐)를 쓴 피켓도 만들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것 같아 들고 가지는 않았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들 너무 수고했어요!
센터엔 시위가 끝나고 간 거였다.

‘선택 사항 없음’이란 선택이 없음이 주는 고민

주제 사마라구의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엔, 선거 당일 비가 엄청나게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엄청난 폭우에 사람들이 투표를 할 리 없다. 다행히 오후 즈음 비가 그치자 사람들이 투표를 하러 나오는데, 그게 또 재밌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시각에 나온 것. 그리고 결과는 대부분의 표가 백지투표. 다시 한 번 투표를 하지만 결과는 이전보다 더 많은 백지투표용지가 쏟아질 뿐이다.

소설의 초점이 “왜 백지투표를 했나?”에 있지 않기에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런 결과가 부쩍 매력 있다. 그래서 요즘 하는 상상 중에 하나는, 이례적으로 대통령선거 투표율이 90%에 육박하는데, 이 중 90%가 백지투표고 나머지 10%에서 적당히 알아서 표를 나눠 가지는 것.

이런 상상이 실현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후보들의 현수막만 봐도 짜증만 날 뿐인 요즘, 백지투표란 결과는 무척 매력적이다. 그러며 다시 떠오르는 바람은 “이상의 후보 중에 지지할 만한 인물이 없음”이란 항목이 생겼으면 하는 거. 지금처럼 후보가 11명이면 13번째 칸(사퇴는 했지만 이름은 표시되니까)에 “지지할 만한 인물이 없음” 혹은 “다 별로”라는 식의 내용도 있어야 한다는 거.

특히나 요즘과 같은 상황일 때, 11명 중 한 명을 어쨌거나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일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중고등학교 다닐 무렵, 학교 선생이 “10대 맞을래, 20대 맞을래? 선택해.”라고 말하거나, “손바닥으로 뺨을 맞을래, 당구대로 엉덩이를 맞을래?” 라거나. 그리고 나선, “이건 네가 선택한 거다”라고 말함으로서 “선택”한 사람의 책임으로 만든다. 딱 이런 상황이 떠오른다. “맞지 않겠다”와 같은 대답은 불가능하고 어쨌든 맞아야 하며, 이제 어떻게 맞느냐 혹은 얼마나 맞느냐 하는 선택만 가능한 상황.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일 뿐이다. 선택하지 않을 권리나, 이런 선택지 자체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 때에야, 그나마 ‘선택이라는 어떤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종종 며칠 전 있었던 번개에서, 호빵님이 정세분석을 하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국에서 진보-보수의 논쟁은 미국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알다시피 미국대선과 관련한 이슈의 핵심 중 하나는, 동성혼과 동성애자들이 군대에 입대할 권리를 부여하는가의 있다. 물론 미국에선 동성애 이슈가 투표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정도이기에 이런 논의가 가능할 테다. 반면 한국에서의 진보-보수의 논쟁은 이렇지 않다. 일테면, 11명의 후보 중에서 1명을 빼면 그 누구도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 얘기하지 않고, 그 한 명도 며칠 잠깐 얘기했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다들 알다시피 지금의 논쟁은 이명박-반 이명박이라는 구도이고, 이 구도의 핵심은 어떻게 해서든 더 많은 득표를 해서,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이 보수이긴 한가? 정동영이 진보이긴 한가? 웃기게도 소위 범여권이라고 불리는 진영은 자신들을 진보나 중도로 포장하지만, 그저 득표에 급급하다는 인상만 받을 뿐이다.
(진보와 보수가 있느냐, 이런 논쟁이 있느냐는 논의는 별개로 하고. 최소한 차별금지법 원안으로 제정할 것을 주장한다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정치성이 ‘진보’란 의미도 당연히 아니다. 단지 득표를 위해서 LGBT차별금지법이나 상당히 ‘괜찮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더 끔찍한 상황일 수도 있다.)

한미 FTA와 파병 반대가 곧 진보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한미 FTA와 파병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말을 했던 후보들(문국현을 비롯한 상당수)을 과연 속편하게 지지할 수 있을까? 그나마 나쁘지 않을 권영길은, 여러 이유로 민노당 이미지가 너무 나쁜 상황인데 지지할 수 있을까? 예전엔 부분적인 이유로라도 어떤 후보를 지지하거나 응원했는데, 이젠 이런 지지마저 내키지 않는다. 아아, 정말로 누구의 이미지가 덜 나쁜가로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가?

정말, 19일은 종강과 기말레폿 마감, 그리고 얼추 열흘간의 휴식에 들어가는 날일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