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환상, 희극과 비극의 공존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2006.11.30. 목, 20:05, 아트레온 8관 11층 E-10

요즘 무슨 영화가 하나, 하고 극장을 검색했다가, [판의 미로]가 한다는 걸 보고 망설임 없이, 오늘 당장 봐야겠다고 작정했다. 예전에 씨네21에서 이 영화와 관련한 간단한 글을 읽고 개봉하길 바랐던 흔적이 몸에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광고는 “판타지”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자 뒷자리의 누군가가 말했다. “광고에 속았다!” 맞다. 하지만 그 누군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는데, 판타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타지 영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종종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말들을 빈번하게 듣지만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를 밝히지는 않는 것 같다. 꼭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해야만 “환상”일까. 루인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다고 해석하는 편인데,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해석에 따른 현실, 즉 환상이다. “현실”이 있다면 왜 같은 공간에서 같은 회의를 했음에도 그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다른 식으로 그 내용과 분위기를 기억하고, 예전에 쓴 일기를 읽을 때면 지금 기억하고 있는 내용과 달라 당황할 일이 왜 있겠는가.

[스포일러 시작!]

이 영화의 환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요정과 궁전, 동화가 나오지만 동시에 이 영화에는 전쟁, 죽음, 고문 그리고 정치적 분쟁이 동시에 나온다. 이렇게 나열하면 하나의 영화에 이런 요소들이 같이 있다는 것에 뜨악할 수도 있겠지만, 뜨악할 정도로 잘 어울린다. 미로를 지키고 있는 판이 나오는 장면과 폭력적인 대령의 행동에 따른 공포가 맞물리고, 사람이 되고 싶은 허브의 뿌리가 불에 타 죽는 장면과 엄마의 죽음이 맞물린다. 오필리아가 세 가지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길과 군대가 반정부군을 소탕하려는 장면 역시 교차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인데, 희극과 비극이 주인공에게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죽음이 사실은 공주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죽어가면서 주인공인 오필리아는 드디어 공주가 되고 죽었다고 믿은 엄마가 왕비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순간 무엇을 희극이라고 무엇을 비극이라고 말할지 모호한데, 그것은 오필리아를 좋아한 사람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필리아 자신에게도 그렇다. 오필리아의 죽음은 오필리아에게 비극일까, 희극일까. 영화는 바로 이런 식의 이분법으로는 구분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음을 얘기하는데, “희극이야 비극이야”라는 식으로 끊임없이 물어보는 방식으로는 그 어떤 설명도, 소통도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 끝!]

올 해, 꽤나 몸에 드는 영화가 많았고, 그래서 몸에 드는 영화가 또 나오겠느냐고 중얼거렸는데, 취소다. 한 번 더 볼 거다. 정말 괜찮다.

가시야: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편지

당신을 만나고 싶다. 기다린다.

베를렌이 랭보에게 보낸 편지는 이 두 문장이 전부였다고 한다. 랭보는 자신의 시를 베를렌에게 보냈고 랭보의 시를 읽고 반한 베를렌은 이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단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편지를 통해 둘은, 당시엔 ‘파국’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사랑에 빠진다.

처음 이 두 문장을 읽었을 때 몸이 아팠고 그 정황을 알았을 때 더 아팠다. 결코 보내지 않은 편지. 보내지 못한 편지이기도 하지만 보내지 않은 것이기도 한 편지. 보내지 않았기에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을 만나고 싶다.
기다린다.

몸상하다

겨울이 오고 있다. 시원하다.

몸이 삐걱거리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는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10톤짜리 망치로 맞은 것처럼 온 몸이 얼얼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침에 일어나질 못했다. 학교는 맨날 9시에 간신히 도착하며 지각하기도 했다. 정해진 출근시간은 없지만 그래도 9시 전에는 학교 사무실/연구실에 도착했으면 하는 몸의 통금시간이 있다.

지금도 입안이 헐은 것처럼 쓰려서 음식을 잘 못 먹는 상태다. 입 안 구석구석이 아픈데 딱히 어디가 아프다고 할 수는 없는 상태. 그냥 어정쩡한 상태. 그래서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지만 몸 어딘가 상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잘 먹어야지.

그러고 보면 뭔가 먹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한 세월을 견디고 있다. 환절기, 계절이 변하는 시간이라 몸이 적응하는 중이라 이럴지도 모른다. 날씨, 계절 등에 몸이 민감한 편이라, 작은 변화에도 몸이 반응한다. 꽤나 오래 전에 읽은 신문기사에,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서 세계적인 석학이 못 나오는 반면 영국은 일 년 내내 날씨가 비슷하기에 석학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한편으론 얼토당토 안 한 소리지만 다른 한편으론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데, 루인이 무식한 건 날씨와 계절변화 때문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 후후후. ;;;;;;;;;;;;;;;;;;;

다행히 사무실은 따뜻하다. 쉬고 싶다는 몸과 죽을 때면 영영 쉴 수 있다는 예전 어디선가 들은 말과 석사 논문만 쓰면 그래도 한 일주일 정도는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뒤섞여 있다. 그래도 지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