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하고 싶지만 결국 소심한 글

어제 블로깅에서 잠깐 언급한, 삐라 2호에 투고할 글과 연결해서…
글을 쓸 때면 종종, 이 글이 출판되면 나는 이 바닥에서 퇴출될 거야,라고 중얼거리곤 한다. 물론 퇴출이란 불가능하다. 퇴출은 한국 사회의 퀴어를 대표할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런 존재는 없으니까. 아울러 각 단체의 성명서를 야기할 수준의 글은 또 아니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 글이 출판되면 온갖 욕을 먹을 거고 더 이상 이 바닥에서 활동하거나 돌아다니기 힘들겠지,라고 중얼거린다.
아직은 이런 일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원고에 다시 그 희망을 건다. 으하하. ㅠㅠㅠ
(사실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시느냐부터가 관건! ㅠㅠㅠ)
내가 가장 쓰고 싶은 글은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글이다. 그러니까 혐오발화나 뭔가 애매하게 혐오의 뉘앙스로 불편함을 야기하는 글이 아니라 사유와 인식론이란 측면에서 불편을 야기하는 글.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은 언제나 다른 많은 글처럼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사실 내 글을 읽어주는 분이 별로 없기도 하거니와 읽어주시는 분은 인식론을 공유하는 분이 많아서..;; 그렇지 않은 분이 내 글을 읽을 이유는 없기도 하고… 하하… 이것을 달리 말하면 나는 언제나 지금 쓰는 글이 나를 이 바닥에서 퇴출 시킬 글이길 바라지만 정작 내가 쓰는 글은 매우 얌전하고 조신한 글이란 뜻이다. 누구도 위협하지 않고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고 누구도 흔들지 않는 그런 얌전한 글. 하지만 또 고민하면, 지금 나 따위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흔들 수 있으랴. 하지만 또 고민하면,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도발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냥 막 지를 수 있는 건 바로 지금인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 도발할 수 있을까. 지금도 못 하면 나중에도 못 하는 게 아닐까?
(퀴어트랜스 이슈에 무관심한 사람에겐 관련 이슈로 어떤 이야기를 해도 도발이기에 그런 사람은 여기서 제외하고..;;; )
지금까지 내가 읽은 글 중, 정말 도발적이고 나를 뒤흔든 글은 내공 가득한 상태로 쓴 글이더라. 유명한 책,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도 학자로선 신진일 때 썼지만 내용 자체는 내공 가득하다. 하지만 난 일단 내공이 없잖아? 그러니 안 되겠지? 언제나 어정쩡하고 어설프게 끄적거리다 말겠지? 아무렴 어때. 글을 쓸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암튼 이번에 쓰고 있는 글의 소재는 죽음과 범주입니다. 다 쓰고 나니 진부한 소리더라고요. 아하하하하하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규범적 슬픔, 젠더의 재생산: 장례식, 트랜스젠더, 그리고 감정의 정치

지난 8월, 여름엔 글을 쓰는 게 아니라고 말하던 당시에 투고한 원고가 출판되었습니다. 출판은 이미 두어 주 전에 되었지만 파일은 이제 나온 듯하여..

글 제목처럼 “규범적 슬픔, 젠더의 재생산: 장례식, 트랜스젠더, 그리고 감정의 정치”입니다. 장례식장에서 겪은 일을 트랜스젠더 맥락에서, 이성애-이원 젠더 규범을 재/생산하는 장례식을 감정의 정치로 독해한 글입니다. 좀 더 잘 쓰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젠 어쩔 수 없지요..
사실 현재 출판 판본으로 “1. 감정/정치”라고 짧게 쓴 부분은 뒤늦게 급히 추가했습니다. 감정과 관련한 논의를 정치적 이슈로 여기지 않는 인식이 만연한 편이라, 이 글의 논의를 맥락화해야겠다고 판단했거든요. 하지만 없는 게 더 좋다고 믿어요. 나중에 단행본으로 재출간하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 부분은 삭제했으면 하고요.
암튼 뭔가 또 하나 시작했구나 싶습니다. 감정의 정치는 워낙 할 얘기가 많은 이슈라, 저도 이번 글을 ‘이 이슈로 앞으로 계속 고민하고 글을 쓰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기분으로 투고했고요.
관심 있으시면 언제나처럼 위의 “writing”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 관련 잡담

지난 주말 하겠다고 다짐한 일은 다 못 했지만 어쨌거나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고, 8월에 투고한 글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트랜스젠더와 감정의 정치에 관한 글인데, 이제까지 내가 쓴 다른 글처럼 잘 쓴 글은 아니다. 우연히 글을 출판할 기회를 잡았고 그래서 다른 주제로 고민하다가 결국 감정의 정치를 투고했다. 찜찜하지만, 다른 주제로 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새로운 글이 나올 때마다 묘하게 죄의식을 느낀다. 죄책감인가? 꼭 이런 식이어야 하나, 꼭 이래야 하나… 혹은 나는 왜 늘 이 정도 밖에 못 할까… 부끄럽지 않아야 하는데 글이 나올 때마다 부끄러움이 쌓인다. 그런데도 글을 쓴다. 오늘도 이런저런 짬을 이용해서 투고할 원고 초안을 작성했다. A4 두 장 분량이니 긴 글은 아니다. 글을 시작하기까지는 많이 귀찮았는데 쓰기 시작하니 또 어떻게 진행된다. 피동형이다. 어떻게 진행된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내 고민이 형성된다. 고민이 농축되었을 때 글을 쓰기도 하지만 고민의 방향을 잡기 위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사건을 이해한다. 이번 글의 주제는 지난 8월에 있었던, 돈을 내지 않고 여자목욕탕에 들어갔던 mtf/트랜스여성의 일이다. 그 사건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방법은 여든 세 가지다. 나는 그 중 한 가지를 쓸 뿐이다. 그러니 충분한 내용도 아니고 풍부한 내용도 아니다. 그저 내가 이 기사를 통해 이해하고 싶은 걸 뽑아낼 뿐이다. 그것이 윤리적으로 그릇된 태도일 수도 있다. 기사의 주인공을 타자로 박제하는 나쁜 짓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뭐라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쓴다. 위험하다. 위험하면 중단해야 하는데 중단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시작된다. 글을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