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리카, 5월 28일의 기록

01
언젠가 장례식장은 축제 같다고 적었다. 친척 장례식장에서 사흘을 보내며 느낀 점이었다. 장례식과 축제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느낌의 단어지만 사실은 정말 잘 어울린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했다.
02
5월 28일.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행사가 있어 아침부터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핸드폰에 신경을 쓰면서도 이것저것 만드느라 바빴다. 28일 아침에 혈액검사를 하고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기에 온 신경은 핸드폰에 머물렀다. 다들 들뜬 분위기였다. 햇살도 뜨거웠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시간은 오전 11시 28분. 핸드폰 액정엔 동물병원 이름이 떴다. 느낌이 안 좋았다. 잠시 망설였다.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거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의사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몇 분 전 리카가 숨을 거두었다는 말.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의사는 나의 반응을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 의사는 잠시 시간을 준 후, 몇 가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장례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장례절차를 아직 못 알아봤다고 어떤 방법이 있는지 의사에게 물었다. 일반화장과 개별화장이 있다고 했다. 여러 동물을 한 번에 화장하는 일반적 화장(몸무게에 따라 비용을 책정한다)과 혼자 화장하고 유골을 보관할 수 있게 해준다는 개별화장, 두 가지를 알려줬다. 개별화장은 비용이 꽤나 비싸고, 일반 화장도 정성스럽게 진행하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좀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당장 갈 수는 없고 이따 오후나 저녁 즈음에 가겠다고 했다.
03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전시준비를 계속했다. 행사는 오래 전에 약속한 일이자 기획한 일이고 일손도 부족하여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 아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갑작스런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면 일손은 아쉬워도 먼저 떠나는 것을 만류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그냥 남았다. 외면하기 위해서. 리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간을 벌고 싶어서.
햇살은 따가웠다. 준비는 끝났고 자리를 지킬 일이 남았다. 자리에 앉자 맥이 풀렸다. 멍하니 아무 곳이나 바라보았다. 내가 어디있는지 헷갈렸다. 들뜨고 즐거운 사람들 틈에서 나의 감정은 헛돌았다. 첨엔 그 헛도는 감정에 안도했다. 어쨌거나 조금은 더 미룰 수 있어 다행이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버거웠다. 5시까지는 자리를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뭔가 지체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서둘러 어딜 가야 하는데 자꾸 외면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찍 일어섰다.
04
평소와는 달리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열린 문으로 리카가 나간 건 알고 있었다. 나는 리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잠깐 문밖에 나갔다가 곧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아직은 낮시간이었고 나는 하염없이 리카를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리카가 떠났다는 것을.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는 것을.
꿈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며 몸 한 곳이 허했다. 텅 빈 느낌이었다. 리카는 늘 문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지만 나를 떠나려고 하지는 않았다. 바깥에서 살았던 역사가 있기에, 바깥을 구경하려고 했다. 문 밖으로 나간 적이 몇 번 있지만 늘 문 앞에 멈췄다. 그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28일 아침 리카가 문 밖으로 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떠난 꿈을 꿨다. 떠날 것이라면 얼굴이라도 한 번 보여줄 것이지…
05
집에 먼저 들렸다. 이동장을 챙겨야 하는지 필요 없는지 몰랐기에 혹시나 싶어 이동장을 챙겨야 했다. 바람은 한 구석에 숨어 있었다. 바람의 이름을 부르다 울기 시작했다. 바람아… 네 엄마가…
내 얼굴을 수습하고 병원으로 갔다. 텅빈 이동장이 유난히 무거웠다. 건강을 회복한 리카를 이동장에 넣어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는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병실로 간 의사는 천으로 덮은 무언가를 가져왔다. 진료실 문을 닫고 나와 의사 그리고… “건강을 회복했으면 좋았을 텐데요..”라고 의사는 안타까워 했다. 나는 의사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자리에 앉았다.
차마 천을 들춰볼 엄두가 안 났다. 한쪽 끝을 조심스레 들었다. 가지런히 모여 있는 뒷발이 보였다. 싸늘한 다리. 두 다리를 잠시 쓰다듬었다. 조심스럽게 반대쪽 끝을 들었다. 의사는 자리를 비켜줬다. 리카의 얼굴이 보였다. 이제는 굳어버린 얼굴, 호흡을 멈춘 얼굴, 사후 수습을 했지만 그럼에도 계속 피가 나는 얼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얼굴을 살폈다. “이 녀석아… 왜 눈도 다 안 감고 떠나는 것이냐… 눈 감을 힘도 없었던 것이냐…”
리카의 두 눈은 반 정도 열려 있었다. 27일 저녁 리카를 봤을 때의 그 모습이었다. 반 정도만 간신히 뜨고 있던 눈, 아니 차마 더 감을 힘도 없어 뜰 수 밖에 없는 눈. 얼굴을 쓰다듬다가, 다리를 쓰다듬다가, 싸늘하게 식은 몸, 늘 따뜻하고 부드러웠는데 이제는 딱딱하게 굳은 몸을 쓰다듬다가, 다 감지도 못 하고 뜬 눈이 서러워 눈물이 났다. 눈을 억지로 감겨주려고 했지만 사후경직으로 눈을 감길 수가 없었다. 눈을 감길 때마다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처럼 다시 떴다. 그것이 살아 있는 눈의 움직임이라고 믿고 싶었다.
몸을 쓰다듬을 때마다, 특히 얼굴을 쓰다듬을 때마다 코에서 피가 흘렀다. 피는 아직 덜 굳은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피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도 무엇이건… 쓰다듬기를 멈췄다. 괜히 내가 또 괴롭히는 것일까 싶었다.
혼자 보낸 것이 미안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곁에 있지 못 해 미안했다. 리카가 눈을 감을 때 곁에 있고 싶었는데, 내 품에서 떠나보내고 싶었는데… 리카가 눈을 감을 때 그 자리는 내 무릎이길 바랐는데… 리카가 좋아해준 나의 책상다리이길 바랐는데…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의사는 리카와 좀 더 있다가 마음이 수습되면 자신을 부르라고 했다. 나는 그냥 지금 얘기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리카와 둘이 더 있어봐야 울기 밖에 더하겠는가.
06
장례절차를 얘기했다. 일단은 개인화장을 하겠다고 했다. 의사는 간이 급격하게 나빠진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부검을 의뢰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부검을 하면 정확한 사인과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이후 화장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부검을 하면 부검 비용은 들지 않으며 화장비용은 지급하면 되지만 유골을 수습할 수 없다고 했다. 개별화장을 하면 원인은 확인할 수 없지만 유골을 수습할 수 있다고 했다. 고민했다. 어떤 것이 좋을까… 의사는 나와 살고 있는 다른 고양이를 걱정했다. 유전일 가능성은 없거나 적다고 했다. 행여나 감염 혹은 전염일 경우, 단순 혈액검사로는 파악할 수 없으며 DNA 검사를 해야 하는데 비용이 20만 원 가량이라고 했다.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혈액검사를 정기적으로 한다면 사전에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사실 난 이미 결정한 상태였다. 개별화장은 기본이었으며 그저 바람의 건강을 어떻게 확인하느냐가 관건이었다. DNA 검사 비용이 너무 비싸 갈등했을 뿐이었다. 개별화장을 하기로 했다. 어떻게 살아온 삶인데… 추운 겨울을 살아 내게 왔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어리숙한 집사와 살았던 리카… 리카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나랑 15년 이상을 같이 살기로 했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장례사에게 전화를 했고 29일 낮 12시에 만나 같이 가기로 했다.
07
바람에겐 아직 제대로 말을 못 했다. 하지만 병원에 다녀왔을 때 나를 보는 바람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리카와 함께 돌아온 것일까?
08
집이 텅 빈 느낌이다. 바람도 알고 있는 듯하다. 자꾸 칭얼거리면서 빈 자리를 찾는다. 바람과 앉아 있는데 빈 자리가 너무 크다. 리카가 머물던 모든 자리가 텅 비어 있다.

[고양이] 리카, 5월 27일의 기록

01
그래서 내게 온 것이냐, 이 녀석아…
02
아침,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갈 때 바람은 당황했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혼자란 사실에. 내가 처음 문을 열고 나갔을 땐 방에 머물렀다. 밖에서 잠깐 기다렸다. 바람이 야옹, 울었다. 문을 여니 당혹스러운 표정의 바람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뒤로 하고 나섰다.
기분은 괜찮았다. 26일 밤, 고양이용 혈당(?)주사 덕분에 리카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을 정도의 기력이 났기 때문이다. 식염수와 혈당(?)을 섞은 수액을 놓고 있으니 조금씩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다. 꼬리를 시원스레 흔드는 모습을 믿었다.
오후에 특강이 있었다. 몸은 무거웠지만 티낼 수 없었다. 사실 마지막에 티가 났다. 10분 정도 일찍 끝내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리카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질문을 하려는 학생이 있었다. 총 두 명의 질문과 10분 더 걸린 답변. 끝나고 짐을 정리하는데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열심히 답변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 잘 안 들렸다. 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내가 깨달을 정도였다. 어렵지 않은 질문인데 학생은 자신이 말을 잘 못 해서 그렇다고 변명을 하며 열심히 질문을 했다. 나는 또 열심히 들으려고 애썼다. 쉽지 않았다. 열심히 답하려고 애썼다. 쉽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리카의 일과 강의는 모두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구분하고 싶었다. 구분이 안 되어 부끄러웠다.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구분이 안 되어 부끄러웠다.
03
바로 리카에게 갈까 하다 집에 들렸다. 바람을 챙겼다. 리카에게 온 신경을 쏟다가 바람이 섭섭하면 안 되니까. 자리에 앉아 잠시 쉬면서 바람과 놀았다. 그러며 고민했다. 리카가 좋아하는 아미캣을 챙길까 말까로. 혹시나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면 아미캣을 주고 싶었다. 리카가 먹지 않아도 길고양이에게도 줄 수 있으니까. 결국 챙기지 않았다. 지금은 아미캣이 아니라 끈적한 영양제를 먹을 시기니까.
전날보단 발걸음이 가벼웠다. 병원에 갔고 의사가 나왔다. 표정이 어두웠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걱정하는 말투. 잠시 기다렸다가 리카에게 같이 갔다. 내가 앉을 수 있도록 준비해둔 의자가 먼저 보였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리카가 보였다. 리카는 옆으로 누워 있었다. 이불을 덮고 수액을 맞으며 누워있었다. 코엔 튜브가 달려 있었다. 입으로 음식을 계속 안 먹을 경우 취하기로 한 조치였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 구토하는 것도 힘들다는 듯 입 주변엔 굳은 침으로 털이 뭉쳐있었다. 코 끝으로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의사는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며 보호자의 의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일단은 하루 더 지켜보자고 답했다. 토요일에 혈액검사를 하기로 했으니 그때까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잠시 내려가서 다른 고객을 보고 온 의사가 말했다. 코에 튜브를 끼우면서 제대로 끼웠는지 확인하려고 엑스레이를 찍었다고. 그러며 확인했는데, 간이 매우 작았다며(거의 없다고 했던가) 이건 급성이 아니라고 했다. 오랜 시간 진행된 일이라고 했다. 나는 몇 주 정도를 떠올렸다. 그러다 몇 달 정도 걸린 것일까요,라고 물었다. 의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고민을 하더니 1년 정도, 1년 이상 진행된 상태라고 했다. 혈액검사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난 중성화수술할 때 기본적 혈액검사를 했다고 말했다. 날짜를 가늠하니 그것이 일 년이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럼 그 전부터 진행되었던 걸까?
04
리카 곁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서 내게 온 것이냐?”라고 말했다. 넌 처음부터 네 간이 안 좋은 것을 알고 내게 온 것이냐. 그런데 왜 좀 더 좋은 집에 가지 않고 고작 내게 온 것이냐. 고작 1년 정도 더 살려고 내게 온 것이냐. 그럼 더 좋은 집으로 가지 왜 나를 선택한 것이냐. 작년 그 추운 겨울을 무사히 살아 남아 여덟 아가도 무사히 출산하고 양육했으니 이제 좋은 일만 있어야 하는데, 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그래서 내게 온 것이냐고, 그래서 내게 온 것이냐고… 계속 중얼거렸다. 한쪽 코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든 수액을 받아 들이는 모습을 보며 더 잘해주지 못 해서 미안하다고 웅얼거렸다. 한때 사이가 너무 안 좋았던 일이 떠올라, 속좁은 집사라서 미안하다고 입안에서 웅얼거렸다. 좀 더 빨리 병원에 데려왔어야 했는데 너무 둔하고 너무 속편하게 믿어서 미안하다고 웅얼거렸다.
직원 한 분이 화장지를 건네주고 갔다.
05
간신히 숨쉬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했다. 이렇게 목숨을 연명하려고 조취하는 게 나의 욕심인 것만 같았다. 초점을 잃은 눈을 보면서, 뇌에도 독이 들어가 경련하는 발을 보면서, 온기를 잃어가는 싸늘한 몸을 쓰다듬으면서, 내가 리카를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리카는 몸에 퍼진 독에서 해방되고 싶은데 나의 욕심이 리카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만 같았다. 리카는 이미 다른 곳을 떠돌고 있는데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더 붙잡고 있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토요일에 하기로 한 혈액검사를 진행한 후 판단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좀 더 일찍 작별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반쯤 감긴 눈을 보면서, 억지로 눈꺼풀을 열면서 “제발 살아나”라고 말하다가 멈추곤 했다. 이젠 정말 뭐가 잘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리를 접고 의사에게로 가서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지금 이렇게 계속 치료하는 것이 나의 욕심인 것만 같다고. 의사도 쉽게 대답을 못 했다. 생명이라면 단 1초라도 더 살고 싶지 않겠느냐고 의사는 말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고, 고마운 대답이었다.
06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입술을 계속 깨물었고 얼굴을 자꾸 찡그렸다. 눈을 자꾸 찡그렸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며 바람을 불렀다. 바람을 부르며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싶었다. 그럴 수 없었다. 서둘러 옷을 벗고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었다. 알콜솜으로 손을 소독하고 나서야 바람을 쓰다듬었다. 아미캣을 주고, 바람을 꼭 껴안았다. 바람에겐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별 일 없다는 듯 행동하고 싶었다.
바람은 잘 견디겠지? 그런데 바람아, 우리 이제 어떡하지?

[고양이] 리카, 5월 26일의 기록

01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저 빨리 생을 마감하는 것이 좋은 걸까,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몇 년을 더 사는 것이 좋은 걸까? 문제는 이틀 뒤의 상황도 예측할 수 없는데. 그래서 리카의 눈을 바라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힘을 내라고 말을 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선 이 말을 망설인다. 정말 힘을 내는 것이 좋은 것일까?
02
26일 오후 2시가 넘은 어느 시간. 문자가 왔다. 리카의 여덟 아깽 중 가장 먼저 분양된 참의 집사, 당고였다. 리카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자였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답장을 쓰려고 답장쓰기 메뉴를 클릭하는데, 또르륵, 눈물이 흘렀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잠시 당황했다. 갑자기 눈물이 고였고 뺨을 타고 흘렀다. 그때부터 참을 수가 없었다. 참으려고 했는데, 답장을 쓰려고만 하면 눈물이 흘렀다. 리카가 위태롭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될 거 같아 무서웠다. 울지 않으려고 했다.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울지 않았다. 리카는 건강을 회복할 테니 걱정할 것 없다고 믿었다. 믿고 싶었다.
알바하는 곳이라 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난감했다. 말로 설명할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꾸욱 참는데도 계속 …
03
알바가 끝나고 다른 곳에 들릴까 했다. 바람이 떠올랐다. 혼자 집에 머물고 있을 바람. 혼자 있는 것이 낯설 바람. 고양이는 집사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잘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걱정이었다. 리카에게 온 신경이 다 쏠려 바람이 섭섭할 수도 있겠다 싶은 걱정도 했다. 아픈 고양이가 걱정이라면 아프지 않은 고양이를 보살피는 것, 어차피 이것이 사는 거 아니었나? 아픈 존재에게 마음이 더 많이 가지만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존재에게 소홀할 수도 없는 태도. 이것이 사는 거 아니었나. 슬퍼도 슬퍼할 여유가 별로 없는 것,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것.
바람은 구석에 숨어 있었다. 지난 토요일 매트리스를 바꿀 때 충격을 받았는지 종종 구석에 숨어 지낸다. 아미캣 몇 알을 내 손바닥에 올려 먹이곤 잠시 할 일을 했다. 시간을 가늠했다. 몇 시가 좋을까?
04
병문안 가는 것이 무서웠다.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다. 병원 근처에서 저녁을 최대한 천천히 먹었다.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밥을 먹었다.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시간을 늦추려 했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려웠다. 알고 있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떤 상황을 직면해야 한다는 현실이 두려웠다.
의사와 만나선 리카에게로 갔다. 참담했다. 얼굴은 반쪽이었고 그 곱던 털은 거칠었다. 침과 구토로 얼굴 주변 털이 다 떡져 있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수액을 하나 다 맞고 새 것으로 갈았다는 점이다. 입원하려고 병원에 데려갔던 날, 리카는 수액을 거부한다는 듯 수액이 들어가지 않은 자세를 취했다. 계속해서 자세를 교정해야 했다. 병문안을 갔을 때, 수액을 새 것으로 갈았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아울러 26일 낮, 혈액검사를 다시 하니 혈당이 정상치로 돌아왔다고 의사가 말했다. 입원할 당시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혈당이 높았던 거 같다고 했다(혈당이 높은 것은 스트레스와 긴장 때문일 수 있다고 첫날 말해줬다). 차도는 없다고 했다.
의사는 내게 의자를 챙겨줬다. 나는 리카를 쓰다듬으며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말을 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눈물이 흘러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른 직원이 내게 “고양이가 주인을 알아보네요. 훨씬 안정감을 느끼네요.”라고 말해 조금 기뻤다. 리카의 눈을 들여다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힘을 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힘을 내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일까? 이 고통을 지연하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일까? 힘을 내라고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힘을 내라고 말을 하는 한 편, 병원에 데려오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명을 달리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그 만큼 안쓰러웠다. 리카가 겪고 있는 고통을 내 멋대로 질질 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엇이 최선의 선택일까?
05
조용히 있던 리카는 갑작스레 ‘와’와 ‘워’ 사이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순간, 가시나무새의 마지막 울음인 것만 같아 덜컥했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나와 같이 있을 때 떠나는 것이니까. 하지만 갑작스레 우는 모습에 힘을 내라고 말을 했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아온 삶인데 이렇게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여덟 아깽을 출산한 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울던 리카는 힘이 빠졌는지 자리에 누웠다. 조금 불안했지만, 나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다시 오겠노라고 인사를 하고,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했다. 의사는 현재로선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있으니, 정 안 되면 코에 관을 투입해서 억지로 음식을 먹일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며 결국 리카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바람에게 밥을 주고 쉬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06
의사의 목소리가 안 좋았다. 갑작스레 리카의 상태가 안 좋다며 아무래도 데려가는 것이 좋을 거 같다고 했다. 일단 데려갔다가 다음날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데려오라고 했다. 전화를 받고 나서 잠시 머뭇거렸다. 가고 싶지 않았다. 이동장을 챙겨 터덜터덜 걸었다. 밤새 간호해야겠지,라는 고민과 다음날 있을 특강은 어떡하나 하는 고민을 함께 했다. 특강을 하기 위해선 특강에 적합한 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몸은 리카를 보살필 몸과는 다르다. 정말 상황이 안 좋다면 바람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도 걱정이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리카에게 가기를 조금 망설였다. 의사가 가보라고 했다.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리카는 옆으로 눕혀 담요를 덮은 상황이었다. 작은 코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눈도 못 뜨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억지로 눈을 열어 ‘제발 일어나’라고 말했지만 리카는 아무런 반응을 안 했다. 다른 고객을 검사한 의사가 올라왔다. 어떻게 조심스레 집으로 데려갈 것인가를 얘기했다. 그렇게 병실에서 데려나와 이동장에 넣었다.
“잠시만요.” 의사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몇 가지 의료도구를 가져왔다. 리카의 귀에서 피를 뽑으려고 했다. 순간 이제 명을 다해 마지막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착각했다. 무서워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묻지도 못 했다. 리카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데려 가는 도중에 이별할 수도 있는 것 같다고 판단하며 검사를 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었다. 혈당 검사였다. 휴대용 기기로 혈압을 검사했다. 의사는 조금 안도하는 표정으로, 저혈압이라고 했다. 고양이용 혈당주사를 놓기로 했다.
다 죽어가던 리카는 혈당주사를 놓자 꼬리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갑던 몸에서 온기가 조금 돌기 시작했다. 옆으로 누워선 일어서지도 못 하던 리카는 앉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의사는 저혈압이면 온 몸이 마비되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그러며 수액의 종류를 바꿨다. 지금까지는 독을 희석하기 위해 식염수만 사용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먹지 않아 위험한 상태라, 식염수에 혈당을 섞은 것으로 수액을 변경했다. 그 와중에 두 번 토했다. 검은 액이 나왔다. 의사는 피라고 했다. 더 이상 토할 것이 없어 피를 토하는 것이라고 했다. 회복한다면 앞으로도 종종 피를 토할 것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회복만 한다면…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던 리카는, 내가 이름을 부르자 꼬리를 겪하게 흔들었다. 다시 살아난 것일까.
의사는 나를 괜히 불렀다고 미안해 하며 다시 입원해도 된다고 했다. 순간,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퇴원은 곧 마지막을 뜻했다. 입원이 희망이었다. 퇴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집으로 데려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이렇게 고마울 줄 몰랐다.
리카를 다시 병실에 데려다 놓았다. 저녁엔 누워만 있더니 이젠 고양이 특유의 앉은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희망을 가지려는 의사는 캔사료를 조금 가져왔다. 혹시나 먹을까 해서라며. 난 사료를 손가락에 조금 덜어 리카의 입에 억지로 넣었다. 혀로 핥기를 바라며, 삼키길 바라며. 하지만 이빨 사이에 둔 사료는 그대로였다. 잠깐 희망을 품었던 의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07
빈 이동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했다. 이 비싼 돈을 들여 치료하고 있으니 무조건 살아나야 한다는 농담 같은 간절함부터, 내가 리카의 선택을 방해하고 괴롭히고 있는 것만 같은 갈등까지. 어떤 선택도 쉽지 않았다.
리카… 넌 어떤 삶을 바라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