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좋은 듯도 해: 바람, 보리, 고양이

원래 고양이가 새로 들어오면 모든 주제는 고양이로 통합니다. 그런 겁니다. 😛

둘의 스트레스나 건강 상태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건 감자와 맛동산이다. 바람의 경우, 보리가 오고 며칠 동안은 맛동산을 거의 생산하지 않았다. 먹는 게 워낙 적어서 맛동산을 만들 건덕지도 없었다. 밥을 너무 안 먹어서 젤 형태의 영양제를 사야할까 고민할 정도였다. 내가 밥그릇을 바람의 입 앞에 가져다 줘야만 약간 먹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어제 밤 화장실을 치울 때 바람의 맛동산이 확실히 늘었다. 평소 수준으로 돌아왔다. ‘충분히 잘’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잘 먹고 있다는 뜻이다. 감자도 잘 생산하고 있다. 어제 밤엔 침대 위에서 발라당 누워 뒹굴뒹굴했다. 보리는 잘 지낸다. 오랜 만에 조그만 맛동산을 구경하며 어쩐지 신기한 느낌이고, 감자도 매추리알 수준이라 장난감 같다. 모든 게 작고 또 잘 생산하고 있다. 이제 밤에 잘 때, 자리 문제만 해결하면 딱인데, 이건 얼마나 걸릴까.
이삼일 전인가, 나름 재밌는 일이 있었다. 알바와 다른 일을 하고 집에 늦게 돌아와 바람을 쓰다듬고 있었다. 바람은 여느 때처럼 캣타워에 있었고. 바람을 쓰다듬고 있는데 보리가 바람에게 다가가 바람의  꼬리로 장난치고 엉덩이를 부비부비했다. 그리고 바람은 가만히 있었다. 내가 바람을 쓰다듬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을까? 그렇진 않을 것 같은데. 이런 거 헷갈릴 고양이가 어딨어(있을 지도 모르지만.. 흐흐).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난다면, 서로 그루밍해주면서 분홍분홍한 관계를 맺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나쁘진 않을 듯하다.
초기 며칠은 집사가 첫째에게 헌신하는 게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를 테면 지금도 나는 바람의 첫 식사(밤에 청소하고 나면 밥그릇과 물그릇을 새것으로 갈아주는데, 이것이 우리 생활에선 첫 식사다)를 밥그릇 두는 곳에 두지 않는다. 바람이 어디에 있건 바람이 있는 곳에 대령한다. 그럼 바람은 까득까득 맛나게 먹는다. 고양이마다 사소하게 애정을 확인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초기엔 이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둘이서 치고박고 싸우더라도 둘이서 알아서 해결하도록 두는 것도 필요한 듯하다. 아직 예단할 순 없다. 배우는 시간이니까.
암튼 이제 나의 수면만 해결하면 될 듯하다. 어제 오후엔 수면 부족으로 어지럽고 두통이 약하게 났다. 끄응… 뭐,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
보리 사진은 제 구글플러스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단 메뉴에도 링크가 있어요. 흐흐.

피곤 혹은 엄청난 수면부족: 고양이

잠을 설치고 있다. 심란한 마음이 잠들지 못 하도록 하는 게 아니다. 두 고양이가 투닥거리는 상황으로 잠을 못 자고 있다.
평소 바람은 침대의 이불 속이나 캣타워에서 잠들지만, 밤에 잘 때만은 내 곁에서 잠든다. 정확하게는 내 머리 오른편에 자리를 잡고 잔다. 몇 년 동안 서로 합의하며 자리를 잡은 방식이다.
며칠 지낸 보리는… 음… 에… ㅠㅠㅠ 일단 자려고 누우면 침대의 사각을 미칠 듯이 뛰고 이불을 발톱으로 마구 긁은 다음 이불을 덮었을 때 튀어나오는 발바닥을 마구 깨문다. 이런 식으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미친 듯이 질주한 다음 간신히 잠드는데 그 자리가 늘 목 언저리거나 가슴 부근이다. 다른 말로 숨이 막힌다. 이것이 요즘 내가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헤롱거리는 첫 번째 이유다.
현재 상황, 바람은 보리를 적당히 피하는 편이다. 사실 이 시기의 캣유딩, 캣꼬꼬마는 거칠 것이 없고 무서운 게 없다. 그냥 미친 듯이 질주하고 폭주하고 순식간에 뛰어다닌다. 그래서 어디든 부딪히고 사고를 일으킨다. 다른 말로 바람이 하악거리거나 으르릉거려고 캣유딩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화를 내는 의미체계가 성립되지 않은 것만 같달까. 그러니 바람의 의지가 보리에게 전달이 안 된다. 다른 말로 바람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잠들려고 해도 이것이 보리에게 적절히 전달이 안 된다. 나의 의사는 당연히 전달이 안 되고. 이것이 야기하는 문제는 단순하고 크다. 바람은 자신의 자리에서 잠들려고 침대 곁에 온다. 이때 바람은 반드시 아웅 하고 울면서 온다. 그 소리가 나를 부르는 것이라, 난 반드시 반응을 해야 한다. 보리는 바람이 근처에 오면 잠에서 깨어나 바로 어떤 식으로건 반응을 한다. 바람은 후다닥 마루로 피한다. 이 일이 새벽 내내 진행된다. 다른 말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넉넉하게 잡아서 30분 단위로 바람은 날 부르고 보리는 종종 침대나 이불 속에서 우다다한다. 이것이 요즘 내가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수준을 넘어 잠이 엄청 부족하고 급속도로 피곤에 쩐 이유다.
졸린다. 아아, 졸린다. ㅠㅠㅠ

바람, 보리, 고양이: 어떤 슬픔

ㄱ.
바람이 지금 겪고 있는 어떤 감정적 경계가, 내가 초래한 일이란 점에서 마음 한 곳에 슬픔이 쌓인다. 더 정확하게는 정말 많이 미안하고 안타깝다.
ㄴ.
귀여운 보리를 충분히 더 애정애정하지 못 하고 조심하는 것도 슬프고 또 미안한 일이다. 큰 결정하고 데려왔기에 더 자주, 더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하고 있다. 바람의 기분도 살펴야 하기에 조심스럽다. 이게 참 미안하고 슬프다.
ㄷ.
슬픔은 시간으로 구성된다. 슬픔엔 시간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난다.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슬픔이 어떤 시간의 흔적인지 종종 궁금하다.
ㄹ.
그나저나 만화책에 따르면, 성묘는 아주 어린 고양이가 혼내거나 싸울 일이 있어도 때리거나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넘어간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그때 본격 싸운다고. 생각해보면 나도, E도 바람의 싸닥션을 맞은 일이 있다. 정말 화나거나 그러면 가차없을 성격이다. 보리가 너무 어려서 지금은 그냥 넘어가는 것일까? 물론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ㅁ.
어떤 신호인지 알 수 없지만 보리가 바람에게 꼬리를 잔뜩 부풀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흠… 향후 바람의 대응은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