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편두통과 비염: 삶의 조건

얼추 10년 전, 일주일 정도 앓아 누운 적 있다. 당시에도 알바를 했기에 누워만 있을 순 없었다. 낮엔 알바를 하고 저녁에 집에 오면 그대로 쓰러져 잤다가 아침에 일어나 알바를 하러 가는 식이었다. 이후 비염과 편두통을 제외하면 감기나 몸살을 앓은 적 없다. 특별히 튼튼한 체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병약한 체질도 아니라 그냥 무난하게 살았다. 아픈데 무감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이틀 전, 화요일 아침 잠에서 깨어났는데 목소리가 안 나왔다. 목이 꽉 막혀 있었다. 어랏? 몸이 좀 이상했다. 하지만 별 일 있겠나 싶어 그냥 평소처럼 움직였다. 오후엔 학교에도 들려 자료 검색도 한참 했고. 그런데 오후부터 한기가 들기 시작했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았다. 저녁 약속을 취소할까 말까로 고민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 싶어, 약국에서 약을 사 먹은 뒤 약속장소에 갔고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제 아침, 여전히 목소리가 안 나왔고 목은 아팠고 몸이 무거웠다. 6시에 눈을 뜬 뒤 두어 시간 누워 있다가 아침밥을 먹어야겠다 싶어 억지로 일어났다. 밥을 먹고 블로깅도 한 다음 다시 쓰러졌다. 설거지를 해야 한다고 중얼거리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안 움직였다. 몇 시간, 눈을 좀 붙였다가 일어나려고 했는데, 기다시피 일어나선 다시 이불 위에 쓰러졌다. 크크. 오후 저녁에 일정이 있는데, 이 일정을 취소하고 누워 있을 것인가, 억지로 움직일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또 시간이 한참 흘렀다. 아니, 일정을 취소할 의지는 없으니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야 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랄까. 눈을 뜬지 일곱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씻으러 갈 수 있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적시니 그나마 좀 괜찮았다. 이후 일정을 간신히 처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전날 청소를 못 해서, 그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청소를 해야겠다고, 바닥청소와 바람의 화장실 청소를 한 다음(이것이 집사의 운명!) 쓰러지듯 누웠고 그대로 잤다.
오늘 아침, 6시에 눈을 떴지만 그냥 안 일어났다. 11시까지 이불 속에서 버티다가 오후 저녁 일정이 있어서 이불에서 나왔다. 한기는 좀 가셨지만 목 아프고 코가 찡한 것이 골도 좀 아프다. 오후 늦게까지 이불 속에서 버틸까 고민했지만 바람에게 밥도 줘야 하고 이불 속에 있어 봐야 궁상스럽게 뒹굴거리기 밖에 더 하겠나 싶어 억지로 움직이려고 나온 것이기도 하다.
얼추 10년 만의 몸살이라 나 자신도 어찌할 바 모르겠고 또 신기하기도 해서 이렇게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렇다고 내게 질병이 없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알러지성 비염과 편두통은 수시로 앓는다. 지금 겪고 있는 몸살과의 차이라면 비염과 편두통은 그냥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내 삶의 조건, 예측할 순 없지만 내 삶의 동반자 정도가 되었다는 점이랄까.
비염은 고등학생 때부터 앓았던가?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다. 그래서 전설의 약 콘택600을 먹곤 했다. 많이 먹을 땐 한 번에 두세 알을 먹곤 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감기가 아니라 비염이란 걸 알았다. 비염이란 걸 안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터지지 않기만 바랐고 터지만 그날 일정은 다 포기하고 그냥 누워있을 뿐이었다. 비염이 터지고 나면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고 늦은 밤이 되어야 진정되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은 비염이 터질 것 같은 기미가 있을 때 미리 약을 먹어 비염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효과적인 비염약을 찾기 위해 참 다양한 종류의 약을 먹었다. 마침내 괜찮은 약을 찾았을 때, 이제 그 약을 쟁여두고 먹었고 약이 떨어지려고 하면 불안을 겪으며 서둘러 약국에 갔다. 물론 반복해서 먹으면서 진정 효과가 약해졌고 약을 먹어도 비염이 터지곤 했다. 그 와중에 약 생산이 일시 중단된다는 얘기가 있었다. 아… 그 시기, 나는 약 대신 다른 수단을 찾고 있었기에 약 생산 일시 중단 소식은 또 다른 결정을 하도록 촉진했다. 약을 먹는 대신 죽염으로 코를 세척하기로 했고 그렇게 얼추 2년이 지났다.
편두통은 초등학교 1학년 즈음부터 앓았다. 그 시절 어린이가 두툥을 앓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꾀병이었기에 욕만 먹었지만. 크. 편두통이 한 번 터지만, 편두통을 겪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오직 눈을 감고 잠이 들길 바랄 뿐이었다. 편두통엔 마땅한 약도 없었다.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어떤 날은 편두통이 심한 부위에 대못을 박고 붉은 피를 흘리면 진정 효과가 있을까,란 상상도 했다. 피가 시원하게 뿜어 나온다면 편두통도 나을 것만 같은 상상. 그래서 편두통이 심해지기 전에, 기미만 보이면 약을 먹기 시작했고 역시나 다양한 약을 거쳤다. 그 중엔 정말 괜찮은 약이 있었지만 수입 중단되어 무척 아쉬워했던 약도 있었다. 지금도 편두통이 도질 기미가 있으면 바로 약을 챙겨 먹는다. 사전에 진정시키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 하는 걸 알기에 일단 약을 먹고 보는 것이다.
오랜 시간 내 삶과 함께한 편두통과 비염은 어떤 의미에서 내 삶의 조건이다. 예전엔 비염과 편두통이 우발적 사건이었고 내 삶을 방해하는 질병이었다. 어릴 땐 내 몸이 저주 받았다고 구시렁거리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록 언제 어떤 식으로 비염과 편두통이 발생할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 두 가지는 내 삶의 기본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 그냥 또 왔구나’라는 느낌이랄까. 여전히 불편하고 반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그 무엇. 그래서 비염이나 편두통이 도지면 이렇게 대처해야 겠구나라는 요령도 생기는(요령이라고 해봐야 그냥 드러 눕는 거지만;; ) 내 삶의 조건 혹은 토대.
그래서 지금 앓고 있는 몸살이 낯설다. 사실 지금 내가 앓고 있는 게 몸살인지 잘 모르겠다. 워낙 없던 일이라서. 어떻게 되려나..

잡담 이것저것: 비염, 아키비스트, 계급

ㄱ.
비염이 한 번 터지고 나면 온 몸이 쑤시다. 죽염으로 코세척을 시작한 이후 콧물이 흐른다거나 코막힘 같은 것은 전에 비해 약하지만 온 몸이 힘든 것은 여전하다. 전엔 코에만 모든 것이 몰렸다면 지금은 비염을 견디기 위해 온 몸이 초긴장 상태다 보니 더 쉽게 지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한 이틀은 그냥 드러누워 쉬어야 할 듯한데 그러지도 못 하니 아쉬울 뿐이다.
지난 일요일 비염이 터졌고 아직도 온 몸이 뻐근하다.
ㄴ.
문헌정보학과 출신도 아니고 관련 자격증 같은 것도 없지만 아키비스트로 나 자신을 설명하거나 정체화하는 걸 깨달을 때면, 재밌다. 이게 다 퀴어락 활동의 여파다. 아울러 내가 정말 재밌게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기도 하다. 운동과 활동에 참여하는 많은 방법 중, 아키비스트가 확실히 좋다. 사실, 퀴어락 활동을 하기 전엔 그냥 나 자신의 판단으로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던 일이, 지금은 아키비스트 활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난 늘, 어딜 가나 퀴어 관련 자료를 수집했고 그것이 지금은 퀴어락 활동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엮이고 있다.
농담처럼 진지하게 말하길, 박사학위 취득하면 퀴어락에 취직할 거다. 지금은 운영위원이고 그때는… 음… 그럼 월급은? 몰라, 어떻게 되겠지, 뭐. 흐.
ㄷ.
박사학위 논문을 쓴 후 취직이 안 될 거라고 미리 단언하는 것은 전공 때문일까, 계급 경험 때문일까? 내가 무슨 논문을 쓰건 그것은 결국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룰 것이다. 피상적으로 전혀 다른 이슈를 논한다고 해도 그것은 트랜스젠더 이슈를 말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다. 그리고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로 논문을 쓴다는 것은 취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기억해보면 어릴 때부터 내가 들은 최고의 직장은 공무원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는데, 안정적 직장이란 점에서였다. 많은 돈은 못 벌어도 안정적이라는 것. 부모님의 빈곤 경험은 안정성을 지향했고, 그 안정성에 걸맞는 행동양식을 지향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종은 공무원이었지 교수나 어떤 연구직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공무원이 싫었다. 직종으로서 공무원이 내 몸에 적합하다고 믿은 적,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나니 내 상상력에 남는 일은…
특별히 많은 돈을 벌 욕심은 없다. 그냥 읽고 싶은 책 살 수 있고, 굶지 않으면서 지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서 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알바로 생계를 연명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물론 여기엔 다른 이유도 있다. 생계를 이유로 내가 주장하고 싶은 언어를 망설이게 될까봐 두려워서다. 한줌도 안 되는 어떤 안정감을 지키려고 내가 말해야 할 언어를 말하지 못 하게 될까봐 두려워서다. 애당초 기존 학제에 편입될 가능성도 없지만, 이런 두려움이 있다면 그냥 외부에서 움직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나의 이런 고민은 분명 내가 살아온 가족의 계급 경험인데, 나는 왜 늘 이것이 단지 전공 문제일 뿐이라고 상상하는 것일까?

더위-바람, 죽염과 코세척

01

이틀 연속 방구석에 콕 박혀 있습니다. 많이 덥네요. 체감온도는 40도를 넘나들고 기온은 37도를 찍고. 덜덜덜. 더워요. 더워요.
이 와중에 바람은 매트리스 시트 아래 들어가 자고 있습니다. 덜덜덜. 며칠 전 오후 3시 즈음 집에 왔더니 시트 아래 들어가선 자고 있어서 얘를 끄집어 내야 하나 그냥 둬야 하나를 고민했죠. 겨울에나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이 더운 여름에도 사용하다니… 덜덜덜. 근데 만날 그래요. 그 외엔 집에서 가장 시원한 곳, 창문 근처 책상 하단에 머물긴 합니다만… 집사랑 달리 더위를 덜 타는 걸까요..
02
작년 5월인가 6월 즈음부터 매일 아침 죽염으로 코를 세척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빼먹을 때도 있지만 한달에 두어 번 빼곤 매일 하고 있죠. 효과는 있는 것 같아요. 비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전에 비해 많이 약해졌어요. 이를테면 작년 5월엔 한달 내내 비염으로 콧물 흘리며 울었는데 이번 여름엔 며칠 조금 심하게 앓고 지나갔습니다. 예전에 비해 빈도도 많이 줄었고 강도도 많이 약하고요. 일 년 정도 더 하면 아예 없어질까요? 아예 없어지길 바라지만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죠.
방법은 별다른 것 없습니다. 컵에 죽염가루 찻숟가락으로 한 스푼 정도 넣고 물에 희석해선 코세척을 하는 거죠. 전 조금 진하게 하고 있습니다. 비염이 워낙 심해서요. 농도가 진하면 코에 염증이 생긴다며, 식염수가 좋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니 무엇이 가장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죽염 희석한 물로 코세척하는 것이 저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일 수도 있고요.
유근피는, 한 달 정도 복용했으니 확언할 순 없지만 제겐 효과가 없었고요.
03
신뢰란 쌓기도 어렵고 유지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믿는 관계가 참 괜찮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