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이매진 번역, 수잔 스트라이커

어쩌다보니 이매진에서 나온 번역서 두 권을 연달아 읽고 있다. 둘 다 번역이 괜찮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꽤나 번역 잘 한 문장이다. 그런데.. 뭔가 미묘하게 번역이 비슷한 느낌이다. 옮긴이는 당연히 다르다. 편집자를 확인했다. 각 책마다 세 명의 편집자가 담당했는데 그 중 두 명이 겹친다. 아하.. 이것이 편집자의 힘인가.. 읽기 수월한 번역서를 만들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작업하다니 대단하다 싶다.
수잔 스트라이커의 <트랜스젠더 역사>를 어떤 연유로 다시 읽었다. 그 중…
공동체의 이름이 “퀴어”보다 “LGBT”로의 변화는 미국에서 성적 정체성 그리고 젠더 정체성 정치의 사회적 역사에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하고 있음을 표지했다.그것은 지배문화의 동일한 억압 구조에 대항하는 다른 집단에 의한 것이 아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함이라는 자유주의적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더욱 급진적 개념의 연합, 저항, 그리고 도전에서 후퇴를 의미했고 때로는 트랜스젠더를 포함하는 시늉을 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몸짓을 취함에 지나지 않았다.
번역이 매끄럽진 않은데.. 이런 날선 비평이 좋다. 곱씹을 부분이기도 하다.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한 단편: 니키, 수잔, 역사 연구

01
어제 아침에 들은 내부자 소식. 5월에 Nikki가 한국에 온단다.. 꺄아아아아악!!!!!!!!!!
니키, 니키, 니키, 니키가 한국에 온다니!!! 니키, 니키, 니키!!
내가 애호하는 학자 중 한국에서 본다면 쥬디거나 수잔일 줄 알았다. 그런데 니키를 먼저 만나다니. 나 그날 무슨 일이 있어도 참가할 거야. 아, 아니지. 어쩌면 등록하지 않고 참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헤헤. 니키 만나면 책에 싸인 받을 거야. 안 되는 영어로라도 꼭 말 한 마디 붙여볼 거야!!
01-1
근데 이렇게 부르니 마치 친한 친구 같구나.. 당연하지만 그분들은 저를 몰라요.. ㅠㅠㅠ 저 혼자 친한 거예요.. ㅠㅠㅠ
02
며칠 전 위키피디아에서 수잔 스트라이커Susan Stryker를 소개한 페이지를 읽다가, 짐작은 했지만 새삼 확인한 사실이 하나 있다. 스트라이커가 1994년에 쓴 논문이,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사람이 쓴 글 중 동료리뷰 학술지에 실린 최초라고 한다.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설명하는 사람이 쓴 첫 학술논문은 샌디 스톤의 글이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물론 다른 대중 잡지, 공동체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실린 글은 더 많다). 스트라이커 역시 트랜스젠더 연구의 역사를 개괄할 때면 늘 샌디 스톤의 글을 가장 먼저 언급한다. 그리고 자신의 글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시기 발간된 논문 자체가 몇 안 되기에 짐작은 했지만… 동료리뷰 학술지, 한국에선 익명 심사자의 심사를 받는 학술지에 실린, 트랜스젠더가 직접 쓴 첫 논문이라니.. 하아.. 역시 나의 스트라이커.. (음? ;;; )
그러다 한국에선 어떨까를 떠올리려다가, 그냥 관뒀다.
03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다 관둔 이유 중엔 “공개적”, 영어로는 “openly”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점도 있다. 이를테면 나는 공개적 트랜스젠더일까? 루인으로 아는 사람은 내가 트랜스젠더란 점을 알고, 루인으로 생활하는 거의 모든 곳에서 나는 나를 트랜스젠더로 설명한다. 하지만 가족에겐 이런 점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나는 ‘공개적’일까 ‘비공개적’일까 ‘반공개적’일까? 다른 대중활동에선 자신의 특정 범주를 밝히지만 부모나 원가족에겐 밝히지 않는 사람과 원가족에겐 밝히지만 다른 곳에선 거의 밝히지 않는 사람 중 누가 더 공개적이고 덜 공개적일까? 나는 과거 한 신문에서 (다른 분들과 함께) 인터뷰를 했고 그 기사가 포털 메인에도 올라갔다. 이 정도면 공개적인가? 근데 원가족과 그 친족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 이러면 다시 공개적 커밍아웃을 안 한 것인가? 이런 복잡하고도 또 말도 안 되는 분류 때문에 “공개적”이란 표현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03-1
이래저래 귀찮으니, ‘저는 덜 공개적이고[openly] 덜 폐쇄적인[closet] 레즈비언 mtf 트랜스젠더입니다’ 정도면 되려나? 아니지, 아니지. ‘저는 반개구간 혹은 반폐구간 레즈비언 mtf 트랜스젠더입니다’면 되겠지? 😛
03-1-1
첨언하면, 수학에선 폐구간이 개구간을 포함한다.
04
지난 주말,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이슈, 동아시아의 섹슈얼리티 역사 등을 연구하는 T. H. 교수와 만나 얘기를 나눴다. 얘기를 나누며 많은 자극을 받았고 또 안타까웠다. 안타까움의 핵심은 한국에서 퀴어 관련 역사, 트랜스젠더의 역사, 퀴어 범주 논쟁의 역사와 관련한 논문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퀴어 이슈 관련 역사가 거의 없다. 이해솔 씨, 한채윤 님, 그리고 끼리끼리, 친구사이 등에서 낸, 운동 중심의 소논문 분량인 글이 몇 편 있다. 하지만 학위논문 수준에서, 다른 말로 단행본 수준의 분량으로 역사를 다룬 연구는 없다. 이 점을 마치 처음 알았던 것처럼 깨달았고 아쉬웠다. 한국에서 첫 레즈비언 학위논문이 1995년에 나왔으니 이제 얼추 20년 정도 되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레즈비언의 긴 역사를 학위논문 수준에서 다룬 논문을 쓸 법도 한데.. 박차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대해야 하나? 후후.
이상하게도 나는 역사를 공부한 적 단 한번도 없는데, 역사와 관련한 논문이 더 많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동성애규범성homonormativity을 말하기

수업시간에 나눈 얘기인데 여기서도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글로 정리합니다.

작년 가을 <여/성이론>에서 이론가 소개글을 청탁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이론가는 수잔 스트라이커Susan Stryker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고 하앍하앍하는 이론가지요. 후후. 수잔 스트라이커가 논한 트랜스젠더 이론을 소개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어찌하여 글은 지난 여름에 나왔습니다.
스트라이커를 소개해야겠다고 결정했을 때, 무엇을 소개할지는 쉽게 정했습니다. 스트라이커 글에 꾸준히 드러나고 있는 세 개의 주제, 트랜스젠더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역사, 그리고 동성애규범성. 앞의 두 가지는 제 연구와 공부 맥락에서 이제는 소개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저 자신, 트랜스젠더 이론을 공부하며 트랜스페미니즘 혹은 트랜스젠더 페미니즘에 초점을 맞췄고 거의 모든 글이 이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아울러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쓰겠노라고 떠들고 있고, “캠프 트랜스”를 출판하기도 했고요. 그럼 동성애규범성은? 전 이 부분에서 조금 고민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얘기해야 할 논의지만 자칫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트랜스젠더 운동에 참여하면서, LGB와 함께 운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성적소수자 혹은 퀴어가 동성애자로 대표되는 현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고민이었습니다. 어떤 모임에서, 트랜스젠더와 바이가 있는 자리인데도, “우리 동성애자들”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동성애자로 환원해버렸습니다. 그 환원은 트랜스젠더면서 레즈비언이거나 게이인 경우를 포함하는 뉘앙스는 아니었습니다. 동성애가 LGBT 혹은 퀴어의 대표 혹은 동의어로 쓰이면서 트랜스젠더와 바이가 누락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물론 당시 활동했던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에서 단체 차원으로 문제제기를 했고 조금 바뀌긴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우리 동성애자’란 언설은 여전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우리 트랜스젠더”라고 말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마 이렇게 발언했다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트랜스젠더만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동성애가 퀴어와 등치되고, 성적소수자와 동일시되거나 대표 형상으로 재현되는 이 상황에 어떤 식으로건 지속적 개입이 필요했습니다. 누구의 경험을, 어떤 범주를 전면에 내세우고 대표적 형상으로 말하고 있는지를 얘기할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동성애규범성을 말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규범적 이성애가 아닌 모든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 실천을 동성애로 환원하고, 특정 동성애 실천을 제외한 다양한 퀴어 실천을 배제하고 은폐하는 방식을 비판하는 동성애규범성 논의가 필요했습니다. 트랜스젠더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 역사가 제 연구 주제라서 소개하고 싶었다면, 동성애규범성은 운동 맥락에서 더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개인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활동가는 제 역할 모델이고, 어떤 활동가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고, 어떤 활동가는 트랜스젠더 및 젠더 이슈에 매우 민감하고… 하지만 집단적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죠. 그렇다면 이 지점을 말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글 한 편 출판한다고 관련 논의를 제기할 장이 마련되지는 않습니다. 글 출판은 그냥 글 출판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글 출판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작업이니까요. 반드시 지금, 동성애규범성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기 전에 관련 논의가 본격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