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랜스젠더 역사의 단편, 한국 트랜스젠더 역사 쓰기 욕심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베이비붐 세대인 몇몇 트랜스젠더는 그들 세대의 많은 다른 일원처럼 동성애 해방 운동, 급진적 페미니즘, 신좌파 정치에 이끌렸으나 그곳에서의 환영은 단명하는 경향이 있었다. 1972년 샌프란시스코의 첫 번째 동성애자 자부심 행진(스톤월 항쟁과 더불어 컴튼스 카페테리아 항쟁을 기념했고 드랙의 참여를 환영했던)은 게이 남성 주최자 중  하나였던 리버렌드 레이먼드 브로쉐어스가 행진의 “비폭력” 정책을 위반하며 “음경을 잘라라!”라고 쓴 피켓을 계속해서 들고 있었던 한 레즈비언 분리주의자 대표단을 주먹으로 쳤을 때 주먹다짐으로 변질되었다. 행진 후의 집회에서 페미니스트와 몇몇 게이 남성 지지자는 그 싸움을 전형적 젠더 역할과 가부장적 여성 억압이 예시로 말하며 맹렬히 비난했고, 다시는 결코 브로쉐어스가 조직하거나 여성을 “조롱하는” 드랙퀸의 참여를 허용하는 동성애자 행진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73년에 두 개로 나뉜 샌프란시스코 자부심 행사가 조직되었다. 하나는 브로쉐어스가 조직했고 다른 하나는 드랙에 반대하고 트랜스젠더의 참여를 명백히 금지하는 게이와 레즈비언이 조직했다. 반anti드랙 행사가 현재 샌프란시스코 LGBT 자부심 기념 행사의 전신이 되는 동안 브로쉐어스는 그 이후 다른 동성애자 자부심 행사를 조직하지 않았다. 같은 해, 대륙을 가로질러 뉴욕에서는 스톤월 항쟁 참여자이자 STAR의 창립자인 실비아 리베라가 크리스토퍼 거리 해방의 연례 기념 행상에서 발언하는 것을 강제로 제지당했다.(Stryker 2008, 101-102)

-자부심 행진에 트랜스젠더 참여를 둘러싼 논쟁은 1990년대 초 다시 한 번 발생합니다. 반대와 찬성이 격렬했다죠. 이 논쟁의 가장 큰 폐해(제 판단입니다!)는 GLBT 운동을 게이가 가장 먼저 시작하고 그 다음 레즈비언이 참여하고 바이가 추가되고 마지막으로 트랜스젠더가 등장 및 운동에 참여했다는 인식을 만들었다는 거죠. 그래서 순서대로 GLBT라는 거죠. 농담 같죠? 미국에서 진짜 이렇게 믿고 있는 게이 활동가가 있더라고요. 그는 자기 주변에선 다 이렇게 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ㅡ_ㅡ; 물론 몇 년 전 이야기인데 지금은 어떨까요?
-크리스토퍼 거리 해방 관련 행사는 바로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실비아 리베라는 스톤월 항쟁 당시, 그리고 그 이후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하지만 스톤월 항쟁은 백인 게이 남성 중심의 역사로 전유되고 트랜스젠더의 발언권은 제지당합니다(리베라가 비백인이란 점도 작용했겠죠?).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국 역사입니다. 한국은 운동 맥락이 너무 달라요. 물론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와 거부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국의 퀴어는 여전히 동성애 중심이고 바이와 트랜스젠더는 누락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니, 누락에도 위계가 있어 트랜스젠더는 그나마 덜 누락되고 바이는 더 누락됩니다. ㅡ_ㅡ;;; ‘재밌게도’ 가끔은 LGBT라고 말하는데 그 내용은 온전히 동성애 혹은 게이나 레즈비언만 지칭할 때도 있다지요. 흐. 그럼에도 미국과는 맥락과 수위가 다른 듯합니다. 사실, 미국과 한국의 맥락이 다르다고 단언해도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온전히 제 경험에 불과하니까요. 알고보면 제가 함께 활동하는 단체, 활동가가 예외고 제가 겪은 적 없는 곳에선 상당한 혐오와 배제가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나중에 “한국 트랜스젠더 역사”란 책을 쓴다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아,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간 한국의 트랜스젠더 역사를 책으로 쓸 욕심은 있습니다. 논문 “캠프 트랜스”는 그 일부고요. 여건만 된다면 당장 쓸 수 있는 논문 주제도 최소한 두 개 이상 있지만 박사학위논문 이후로 미루고 있죠. 급한 건 아니니까요. 역사를 정리한 단행본은 적어도 10년은 더 지난 다음의 일정입니다. 크크. ;;;
그때까지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하죠. 이왕이면 그때까지 이 블로그도 남아 있길 바랍니다. 제가 혹은 루인이라고 불리는 어떤 사람이 남아 있는 한 이 블로그도 남아 있겠지만요. 🙂 그나저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정말 “한국 트랜스젠더 역사”란 책이 나온다면 지금 쓰고 있는 이 포스팅은 성지가 되는 건가요? 크크. ;;;;;;;;;;;;;;;;

수잔 스트라이커Susan Stryker, 트랜스젠더

01

8월까지는 어떻게든 초벌을 완료해야 하는 일이 있어 공부는 포기하고 그 일만 하고 있다. 그 일만 하니 정신이 혼미하여 이름 뿐인 트랜스젠더연구소라도 하나 만들까라는 망상을 한다. 명함을 하나 만들고 나를 소개하는 구절로 “트랜스젠더연구소 소장” 혹은 “트랜스젠더연구소 대표”라는 식으로 홍보하는 거지. 심지어 글을 출판할 일이 있으면 이름 옆에 “루인(트랜스젠더연구소)”라고 쓴다거나. 크크크. 실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 그런 단체. 그저 이름만 있는 단체.
물론 망상입니다. 현실을 도피하다보면 이렇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도 합니다. ;ㅅ;
이제 정신 차려야지요.. ㅠㅠ
하기 싫은 일은 아니고 너무 재밌는 일이지만 진도가 더디니 이런 망상도 하네요. 흐흐.
02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수잔 스트라이커Susan Stryker를 소개한 글이 출판되었습니다. 잡지는 지난 6월에 나왔고 PDF는 지난 주에 나왔고요. 언제나처럼 WRITING 메뉴에 있습니다.
수잔 스트라이커라는 트랜스젠더 이론가를 소개한 글입니다. 역사학자면서 트랜스젠더 이론의 발달에 상당히 중요한 공헌을 했지요. 제가 하앍하앍하며 좋아하는 이론가, 저자기도 합니다. 흐흐. 소개 내용은 트랜스젠더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역사, 동성애규범성입니다. 나열한 단어만으론 별개의 내용 같지만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자세한 건 그냥 글을 참고해주셔요. ;;;;;;;;;;
(소개글을 요약할까 하다가 급 귀찮아서요. 크. )
03
그러고 보면 이 블로그를 운영한지도 7년이 넘었네요. 2005년 8월 11일부터 시작했으니까요. 초기 몇 년은 한 달에 글 50편을 쓸 때도 있었는데 이젠 10편도 안 쓸 때가 많네요. 그렇다고 애정이 식은 것은 아닙니다. 애정은 여전합니다. 제가 꾸준히 사용하는 유일하게 꾸준히 사용하는 공간이고요. 그냥 고민이 많은 거겠죠. 그렇다고 믿으려고요.
참, 저도 얼마 전에 알았는데요. 모바일에서 제 블로그에 들어올 경우, 아이폰 계열에선 자동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전환하지만 안드로이드 버전에선 그렇지 않았습니다. 근데 별도의 방법이 있더라고요. 별다른 것은 아니고 https://www.runtoruin.com/i 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주소 뒤에 빗금 하나 치고 i만 추가하면 됩니다. 전 이걸 이제 알았어요..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