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호감가는 대학, 흑역사 전시, 게이, 착각은 자유

오늘 아침은 떡만두국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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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는 좋은 학교입니다. 같은 제목에 판본 혹은 내용이 조금씩 다른 듯한 책 세 권을 각각 다른 대학교에 상호대차 신청했는데 목원대학교만 승인해줬습니다. 조만간에 책을 받을 수 있겠죠? 앞으로 목원대학교는 좋은 학교라고 기억하겠습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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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니는 학교도 한때 좋은 학교였습니다. 석사 때 다닌 학교에선 구독하지 않던 저널을 구독하고 있어서, 원하는 논문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었거든요. 물론 요즘은, 종이책으로 구매하면 좋을 법한 책을 전자도서로 구매하면서(심지어 모니터로 읽기에 매우 불편한 시스템!) 호감이 떨어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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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CRC 겨울 아카데미 파랑 님 강의 중간에, 인터뷰한 사람들이 옛날 글을 지운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그 심정을 정말 이해한다. 나도 내 블로그의 옛 글을 지우고 싶으니까. 아카이브란 측면에서, 그리고 이곳이 더 이상 내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니란 점에서 지우진 못 한다만.. 그래도 지우고 싶은 글이 가득하다. 예전에 왜 저렇게 글을 썼나 싶기도 하고. 엉엉. 자신의 흑역사를 스스로 전시하고 있는 꼴이라니. 그래서 난 내가 예전에 쓴 글을 안 읽는다.
지옥이 있다면 그 중 최고의 지옥은 자기가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읽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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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자료를 검색하며 “게이”를 입력했더니, 게이트, 게이지 같은 단어가 빈번하다. 뭐, 그럴 수 있지.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빌 게이트가 종종 등장하고 2000년대 들어서면 게이머가 등장한다. 시대별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다. 근데… ‘가게이름’은…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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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나온 게이 관련 시와 1996년에 나온 게이 관련 시의 가장 큰 차이는, 1994년엔 트랜스젠더를 지칭하며 게이라고 썼고 1996년엔 남성동성애를 지칭하며 게이라고 썼다. 각각 다른 시인이 썼는데 시인의 지식 수준이 빚은 차이일까, LGBT 운동의 성과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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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로 만나는 인간 관계의 폭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학과 사람, KSCRC의 활동가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 세미나를 매개로 만나는 사람, 그리고 몇 분의 선생님 정도다. 학과 사람을 제외하면 최소 몇 년은 만난 사람이 다수고, 학과 사람을 포함하여 지금 주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참 좋은 이들이라 내게 좋은 얘기만 해주는 편이다. 호의적으로 대해주고. 그래서 종종 내가 온실 속 잡초는 아닐까, 걱정할 때가 많다. 뭐, 온실 속의 삶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나의 경쟁자는 어제 내가 쓴 글과 내가 사랑하고 또 질투하는 몇 명의 저자지만, 그래도 종종 불안하다. 낯가림이 심하고 주변 평에 흔들리는 편은 아니라고 해도(그렇다고 영향을 안 받는 건 아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쓴 글이 어떻게 읽을지를 떠올리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그 부끄러운 글을 읽고 할 평을 상상하노라면 땅을 149,567,999.826km 정도 파고 들어가고 싶기도 하다. 내가 출판한 글의 유일한 효용이라면, ‘이딴 식으로 글을 써도 출판할 수 있다니 나도 출판하겠어!’라며 꿈과 희망, 용기를 주는 점이랄까. 이 효용은 확실히 나의 자부심이다. 후후.
이런 불안이 늘 내 곁에 있음에도 낯선 사람 사이에 내가 어떻게 유통되는지 굳이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그 평을 듣는다고 이미 출판한 글을 회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환골탈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내가 정한 속도와 내가 정한 방식으로 움직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불안은 낯선 사람 만나기를 기피토록 한다. 물론 내가 쓴 글을 기억하실 분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그래도 행여나 기억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그러고보면 내가 글을 쓸 기회를 얻고 강의를 할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미스테리다. 세계 8대까지는 아니어도 13대 정도는 될 듯.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나를 일갈하는 구절이 있다. 만화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에 나오는 구절로 “그러한 일에 니가 죄책감을 느끼는 건 자의식 과잉인 거야. 도대체 너란 놈이 역사적 흐름을 움직일 만큼 큰 존재라고 생각하는 거냐?”라고 이죽거리는 시안의 말. 맞다. 난 이런 고민을 하기엔 그냥 변방의 듣보, 세상에 흔한 블로거일 뿐이지. 크크. 그리고 이게 가장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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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CRC 강의를 들으며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떠오르는 아쉬움 중 하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과에 먼저 입학해 공부하고 있는 ㅈㅇㅅ이 기말페이퍼로 쓴 글 중에 “‘탈반’의 계보”가 있다. 그 글을 읽고 무척 매력적이고 흥미로워 출판을 목적으로 다시 쓰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ㅈㅇㅅ은 극구 사양해서 현재 비공개 문서로 남아 있는데… 다시 읽어봐야겠지만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10대의 탈반, 바이, 기혼 이반, 이 세 가지 논쟁에 나타나는 레즈비언 규범성을 논한 글이다. 레즈비언 규범성을 논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전개하는데 그건 내가 이곳에 공개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생략하고…;; 암튼 지금 센터 강의에서 함께 읽는다면 무척 좋을 법한 글인데… 아쉽다. 그나마 간접적으로 공개할 방법은 내가 강의할 때 인용하는 형식 뿐인가? 크. 아, 비공개 기록물은 인용할 때도 저자의 허락을 구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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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여성학과 30주년 기념 학술대회 세션 내용을 보며(http://goo.gl/Aybjb)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이슈가 없어 좋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퀴어 세션 혹은 발표가 단 하나도 없어 놀랐다. 이대 여성학과에서 나온 그 많은 레즈비언 연구는 어째서 누락되었을까? 누구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