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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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한국엔 젠더연구가 (거의)없다란 사실을 절감한다.
젠더, 젠더, 젠더를 말하는 절대 다수의 논의는 여성 혹은 성차를 얘기할 뿐이다. 젠더 연구와 여성 연구는 다름에도 성차 혹은 여성과 남성 이분법에 바탕을 둔 얘기를 왜 젠더 연구라고 말하는 것일까?
정말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한국에 젠더 연구를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그리고 젠더 연구자는 섹슈얼리티를 연구한다는 소릴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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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젠더를 얘기하는 수업이나 강좌가 매우 불편하다. 이 불편함에 바탕을 둔 문제제기는 하지 않는다. 단순히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이다.
(언어는 언제나 발신하고 수신하는 그 짧은 찰나에 비틀어진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때때로 젠더를 얘기하지 않는 자리가 속편할 때가 있다. 물론 또 다른 불편함을 느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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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젠더를 연구한다면서 성차 혹은 ‘여성’ 범주만을 연구하는 이들이 젠더 자체를 연구한 논문을 읽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 논문은 젠더가 아니라 트랜스젠더 혹은 레즈비언을 연구한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읽어도 그 논의를 연구에 반영할 가능성도 낮다.
연구자 차원에서 젠더에 대한 이해는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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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혹은 연속선상에서, 트랜스젠더 이슈가 성적지향 이슈로 혹은 섹슈얼리티 이슈로 수렴되는 방식에도 끊임없는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트랜스젠더는 성적소수자인가? 트랜스젠더는 LGBT란 방식으로 묶일 수 있는가? LGBT로 묶을 수 있다면 그때 트랜스젠더는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가?
젠더는 여성으로 수렴되고, 트랜스젠더는 성적지향으로 수렴될 때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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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길 잘했다.

공부한다는 것: 젠더 연구, 등록금

만약 우리가 연구나 활동을 제대로 한다면, “현실/실제”는 지금보다 더욱더 불안정하고 복잡하며 무질서한 모습으로 나타나리라. by 플랙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해 오늘에야 다 읽은 논문의 마지막 구절이다(원문을 조금 수정했다). 어렵지 않은 논문이지만, 모든 문단을 요약하느라 읽는데 시간이 걸렸다. 평소 다른 논문을 읽을 땐, 흥미로운 문장만 번역하고 모든 문단을 요약하진 않는다. 이번 논문은 그저 행여나 나중에 발제를 한다면 수월할까 싶어 요약했는데… 이 논문을 발제할 일은 없을 듯하다(앞으로도 이렇게 읽는 일은 없을 듯 싶고…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 1980년대 논문이라, 이후에 나온 논문에서 더 중요한 성찰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논문이 상당히 좋은데 젠더를 이분법으로 수렴할 수 없으며, 젠더를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버틀러를 필두로 등장한 젠더 논의가 이분법 비판의 촉발이 아니란 얘기다. 버틀러가 너무 떠서 그렇지 버틀러 이전에 젠더 이분법을 비판한 논자는 상당히 많다. 젠더 이론을 공부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이런 역사를 추적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이 논문은 한 선생님에게 추천 받았다. 아직은 공개할 수 있는 참고문헌이 아니라 자세한 내용은 생략. 좋은 논문을 알려준 그 선생님에겐 고마움을!)
이 논문을 읽으면서 가와바타 히로토의 [리스크 테이커]란 소설을 같이 읽고 있다. 이 책은 이제 1/3 정도 읽었다. 금융소설? 기업소설? 금융가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일본소설이다. 대충 재밌다.
초반에 몸을 때리는 구절이 나왔다. 주인공 중 한 명은 인디에서 록커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는 평생 록커로 살고자 하고, 원하지 않는 음악을 하지 않길 바라기에 금전의 어려움이 없길 바란다. 그래서 MBA를 취득하고 돈을 벌기로 한다. 그러며 하는 말이 평생 록커로 살 거라 몇 년 정도 금융업에서 돈을 벌어도 괜찮다고… 이 부분에서 최근의 고민이 떠올랐다.
진학을 결정하고 등록금을 걱정하면서, 지난 3년 동안 등록금도 안 모으고 뭐하고 살았나 싶을 때가 있다. 지난 3년의 시간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난 분명 내가 바라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평생 공부만 할 거고, 퀴어활동판에서 떠나지 않을 예정이니 3년 정도 연봉 많이 주는 곳에 취직해서 등록금을 모았어도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든다. 대학원 등록금을 고민하니 이제야 이런 아쉬움이 생긴다. 무슨 거창한 일을 하겠다고 등록금도 못 모았나 싶다. 얼마나 대단한 공부를 하겠다고 등록금도 없이 입학부터 빚잔치를 하려고 결정했나 싶다. 재밌다고 한 일이 내 등록금을 확보해주는 것도 아닌데… 흐흐. 회의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의 자잘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고 보면 (일부)돈 많은 1세대 페미니스트가 젊은(?) 세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지지는 등록금 지원이 아닐까 싶기도.. 으하하. (물론 이 이야기는 50~60대 페미니스트와 20~30대 페미니스트의 정치적/정서적 간극과 관련한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혼자 한 상상입니다만..;;) 혹은 대한민국의 1~3%에 해당하는 부자가 대학원생 2~3명의 등록금을 후원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는 사회라면 꽤나 훈훈할 텐데… 아.. 별의 별 상상을 다 하는구나. 푸핫.
(근데 이런 시스템이 갖추어진 사회라면 애당초 지금의 한국 같지 않겠다는.. 뭐, 그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