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주제로 글쓰기: 채식과 학벌

세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첫 번째 판본은 초고란 전제 하에서 발송했다가 5일 만에 취소했다. 글을 취소한 날인 지난 토요일은 청탁 마감 날이었으니 꽤나 당혹스러웠으리라. 여러 가지로 친구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다시 하나의 판본을 쓰고 프린트를 했지만 역시나 폐기했다. 그렇게 (첫 번째 판본과는 완전히 다른)세 번째 판본을 썼고 친구에게 글을 보여주고 메일로도 보냈다. 첫 번째 글은 기획을 잘못 해석한데다 글 자체도 어정쩡했다. 두 번째 판본은 첫 번째 판본을 폐기하면서 새로 구상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야겠다는 욕심이 보여 폐기했다. 오직 한 가지 얘기만 하겠다고 다짐하고 세 번째 판본을 새로 썼다. 일요일인 어제 쓰고 오늘 낮에 메일로 발송했다. 루인에게야 모든 글이 초고이니 계속 고쳐야 하지만(발송하고 나서 다시 읽으며 또 퇴고를 했다는;;;) 틀 자체는 안 바꿔도 될 듯 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은 어제 아침에야 비로소 기획의도를 파악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간 기획의도를 잘못 파악한 측면이 있었고(몇 가지 지점들은 파악했지만, 결정적인 측면을 놓치고 있었다) 어떤 강박들이 있었다. 더군다나, 루인의 많은 글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 편의 글에 다 쏟아 붓는 편이라면, 이번 글은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을 주는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이 글엔 “루인의 글”이란 어떤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ㅋㄷ의 지적처럼 첫 번째 판본은 “루인의 글”이란 느낌이 없었다. (ㅋㄷ, 고마워요!)

이렇게 세 가지 판본을 쓰는 과정을 거치면서 배운 건, 한 편의 글엔 한 가지 얘기만 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쓴 많은 글들이 한 편의 글에 여러 이야기를 동시에 풀었고(마치 이 글이 루인의 마지막 글이자 유일한 지면이라도 되는 냥) 그래서 다소 산만하거나 중구난방인 측면이 없지 않았다면, 이번 글에선 어떻게든 한 가지 이야기에 집중하는 방식을 취했다. 물론 하고 싶은 얘기는 많았다.

선택한 주제는 채식과 학벌이었다. 아니, “채식으로 읽는 학벌, 학벌로 읽는 채식”이 더 정확하겠다. 부산에서 서울로 유학 온 루인으로선 채식과 학벌이라는 관계가 꽤나 선명한 편이고, 채식과 관련한 최근 고민 역시 이 지점이기에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입장에서 재밌었다. 그런 동시에 이 주제가 이번 기획의도를 꽤나 잘 반영할 수 있겠단 느낌도 있었다. (내용을 압축한다면 “음식의 정치학“에 있는 내용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쓰는 이유는 이번 글은 블로그에 공개할 수는 없는 성격이라서;;; 물론 공개하고 싶은 바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글을 쓰면서, 채식과 학벌의 관계를 좀 더 집중적으로 다뤘고 그래서 스스로 뭔가를 정리할 수 있었다. 다른 여러 교차지점들을 동시에 다뤄야 한다고, 이 부분은 이렇게만 말할 수는 없고 다른 지점들과 같이 얘기해야 해, 라고 계속해서 중얼거렸지만, 그걸 매끄럽게 풀어낼 능력이 현재의 루인에겐 없고, 글의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일부러 쓰지 않기도 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이유로 제한했는데, 그 이유는 친구가 알고 있으니까….) 이런 “쓰지 않음”을 통해 루인의 위치와 이 글의 한계를 분명히 할 수 있고, 괜히 이것저것 다 언급해서 비판을 피해갈 여지를 만들기보다는 차라리 한 가지 측면이라도 분명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채식과 관련한 다른 많은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하지 않고, 채식과 학벌의 관계에 집중해서 글을 전개했다.

그러며 주제를 좁혀야 할 필요성을 조금은 느꼈달까. 주제를 좁혀서 글을 쓸 필요가 있다는 선생님들의 지적이 무슨 의미인지 비로소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번 글쓰기 작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다른데 있다. 그것도 “루인의 글”같지 않은 그 글, 즉 폐기한 그 글 속에 있다. 루인에게 가장 중요한 지점. 하지만 이 지점은 친구에게 먼저 말하고 여기 써야지. 이렇게 하겠다고 딱히 약속을 한 건 아니지만, 그냥.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하고 소중함의 표시이기도 하고. 하고 싶은 얘기, 듣고 싶은 얘기, 나누고 싶은 얘기가 참 많은데….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 있어야만 만나는 건 아니지만….

+
확실한 건, 이렇게 나온 세 번째 판본과 같은 글은 다른 어디에서도 쓸 수 없는 글이란 것. 특히나 “루인”이란 이름으로 외부지면에서 쓸 수 있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고. 그래서 이런 기회를 준 친구에게 더욱더 고맙다.

배수아, 당나귀들, 회색 時

요즘 한 수업이 다소 불만족이라면 다른 한 수업은 너무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특히나 그 이유는 수업으로서는 드물게 채식주의와 관련해서 한 달 정도 진행하기 때문. 그렇게 읽는 책 중 한 권은 배수아의 [당나귀들]이다. 예전에 채식주의 페미니즘 세미나를 하며 세미나 자료로 쓸 한국어 책이나 논문이 너무 없어 아쉬웠는데, 진작 이 책을 알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152쪽에 나오는 “혹은 내가 결코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건네는 따뜻한 한 그릇의 굴라쉬 수프에 주사위 모양의 고깃덩이가 들어 있을 때, 내가 채식주의자임을 그가 잊은 사실을 가볍게 지적하는 것이 수프 접시의 국물을 떠먹기 전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먹은 다음이어야 하는가.”가 가장 크게 남아 있다. 정작 배수아는 그저 흘리듯이 쓴 부분일 수도 있지만, 실제 이 부분과 관련해선 딱 이 부분에서만 기술하고 있지만, 항상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같이 읽은 “회색 時”란 작품은 너무도 매력적이다. 짝사랑이란 섹슈얼리티와 우울증, 채식주의, 경험 해석과 기억 해석 등을 둘러싸고 아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소설. 특히 미래를 기억하고 과거를 예측한다는 부분, 그래서 미래를 기억하며 쓰는 방식과 과거를 예측하며 쓰는 방식이 상당히 유사한데 이것을 읽다보면 일직선으로 기술하곤 하는 시간 개념이 아닌 서로 꼬이고 휘어지는 시간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훌]에 실려 있다.

신념을 고백하는 일은 자신의 정신적 경계를 드러내고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신념의 비무장 지대, Noman’s land의 모호함 속에 숨어 있을 때 우리는 마치 무한을 살고 있는 듯이 안전하고 충분히 보호받는다고 느낄 수 있으나, 신념 속에서는 알몸을 드러낸 고슴도치만큼이나 목숨을 노리는 굶주린 상대들에게 고독하게 노출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11쪽)

타인의 말 한 문장 한 문장에 집착하여 총체적인 비판을 날릴 수 있는 용기의 근저에는 대개 한 인간이 그의 한 마디 발언을 통해서도 이 세계의 모든 정신을 빈틈없이 한꺼번에 반영해야 한다는 무리한 전제가 숨어 있는 듯하다. (75쪽)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먹을 음식을 직접 요리했지만 양념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기름의 온도가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얼마나 오래 요리해야 하는지 한 번도 정확히 측정하고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런데 신경 쓰는 것보다 맛이 없으면 맛이 없는대로 먹는 편이 더 나았다. (115쪽)

나에게 추억의 음식이란 전자레인지에서 갓 꺼낸 따뜻하고 하얀 햇반과 그 위에 뿌려 먹는 조미료 김 가루에 적당한 양의 미역이 떠 잇는 인스턴트 미역국과 지나치게 포만감을 주지 않는 스낵 면을 뜻한다. (148쪽)

지금 외국에 있는 당신에게 고향과 관련해서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인가?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우스꽝스럽게도 가장 비인격적인 인스턴트 음식들이었으며, 오직 개인의 상태에서만 토속적이라고 불릴 만한 그 음식들이 고향이라는 단어와 함께 내 토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집에서 먹었던 음식이 아니라 어느 날부턴가 내가 스스로 해먹었던 음식들이 말이다. (149쪽)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이 먹는 음식이 바로 당신 자신이다.’ 이것은 유명한 채식주의 홍보 문안이다. 하지만 음식에 대해서 내게 중요했던 것은 좀 더 다른 질문이었다. 그것은 ‘당신은 어디서 왔는가?’이다. …(중략)… 절대적 채식주의자였던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당신의 출처는 무엇인가?’ …(중략)… 그때 그의 질문은 정확히는 나의 식습관을 물은 것이었다. 그에게는 바로 그것이 국적을 의미하는 ‘XX인’을 능가하는 중요한 정체성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 경우 그의 ‘출처’란 정체성의 고향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쨌든 그의 식대로 말하자면, 내 첫 번째 고향은 인스턴트 식품이었다. (150-151쪽)

혹은 내가 결코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건네는 따뜻한 한 그릇의 굴라쉬 수프에 주사위 모양의 고깃덩이가 들어 있을 때, 내가 채식주의자임을 그가 잊은 사실을 가볍게 지적하는 것이 수프 접시의 국물을 떠먹기 전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먹은 다음이어야 하는가. (152쪽)

안녕, 내 예쁜이!

네가 오지 않는다면
빵 속에 숨겨 둔 칼을 꺼내
부스러기를 털어 버린 다음
네 가슴 깊숙이 찌를 거야.
(172쪽)

차마 말을 계속할 수 없다. 내 슬픔의 용적이 내 존재를 능가해 버리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슬픔의 화상 때문에 매일매일 고통스럽다. 내 목구멍은 송두리째 타버리고 나는 앞으로 나간다. 오직 슬픔이 나의 동력이다. …(중략)… ……죽어 가면서 나는 슬픔으로 인해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간다. 오직 슬픔만이 나의 불타는 호흡이다. (268-269쪽)

음식의 정치학

2007.03.22. 수업시간 발제문으로 쓴 내용.

캐롤 아담스의 [육식의 성정치](예전엔 [프랑켄슈타인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로 나왔음)가 어제의 수업 교제였고, 이 책의 1부 발제를 맡았다. 덕분에, 오랜 만에 채식과 관련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뭐, 물론 지난 주부터 4주에 걸쳐 이와 관련한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고 [육식의 성정치]는 그 중 두 번째 텍스트.

이 책의 발제를 맡았지만, 내용 요약엔 소질이 없는 루인은 내용요약으로 발제문을 쓰지는 않는 편이다. 그보다는 글을 읽으며 느낀 지점들, 경합하는 지점들을 또 다른 에세이로 구성하길 선호한다. 루인의 글 속에 수업교제의 내용을 녹이는 동시에, 읽으며 수긍하지 않는 지점들을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 있길 바라며. 물론 이런 바람은 언제나 성공하지 못한다. 언제나 실패할 것을 알기에 쓰는 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실패를 통해 글을 쓰는 거 아닌가?

이왕이면 아담스의 책을 읽는 것이 나쁘지 않겠지만 읽지 않았어도 상관 없을 듯.

[#M_ 읽기.. | 접기.. |

음식의 정치학
-캐롤 아담스 <육식의 성정치> 1장 발제
루인 2007.03.22.

※페이지는 <프랑켄슈타인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류현 옮김, 서울: 미토, 2003)를 토대로 했습니다.

1. <웰컴 투 동막골>
몇 해 전, 개봉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어떤 의미에서 캐롤 J. 아담스가 얘기하는 채식주의 페미니즘 틀로 설명하기에 딱 좋은 영화이기도 하다. 강원도 산골, 외지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위치하고 있는 동막골에 6․25에 참전한 군인들이 들어가고 이들과 동막골 사람들이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흥미롭게 분석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채식과 육식이라는 방식으로 해석하기에도 좋은 이 영화는, 육식을 하는 외지인-군인들과 채식을 하는 동막골 사람이라는 구도를 형성한다. 물론 명시적으로 동막골 사람들이 채식자임을 얘기하진 않지만, 영화 속에서 동막골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감자나 옥수수 등 소위 채식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다. 이런 구도는 마을에 나타난 멧돼지를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멧돼지가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피하려고 하는데, 외지에서 온 군인들은 힘을 모아 멧돼지를 잡는다.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마을 사람들이 잠든 틈을 타 몰래, 군인들은 멧돼지를 잡아먹는다. 이 장면은 그간 “휴전”상태에 있던 대한민국 군인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인들의 긴장 관계를 해소하는 장면인 동시에, 육식을 통해 소위 말하는 “남성연대”를 형성하고 돈독히 하는 장면이다.

사람들과 만나다보면 종종, 채식을 하면 정말 성격이 차분해지고 순해지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무슨 생각으로 루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이 좀 차분했으면 하는 고민에서 루인이 채식을 하는 걸 알고 하는 질문이었다. 채식을 한다고 말하면, 루인의 (차분한)성격은 채식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10년 전 즈음에 읽은 김수영 평전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성격이 거칠고 생떼를 부리 던 어린 김수영을 보다 못한 김수영의 할아버지는 고기는 주지 말고 채식을 시키라고 했다는 얘기. 이보다 더 오래된 기억엔, “식물형인간과 동물형인간이 있다”는 말도 있다. 식물형인간이 한자리에서 조용히 지내는 인간이라면 동물형인간은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활동적인 인간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분류한 사람은 동물형인간이 좋은 거라고 했다. 당시엔 그리고 지금도 개발 혹은 “발전”을 중시하는 사회적인 맥락에서 식물형인간보다는 동물형인간을 중시했음을 짐작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식물과 동물을 구분하고 그것에 어떤 성격을 부여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식물은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생명이니까 채식을 하면 성격이 차분해진다는 발상. 조금만 고민하면 코미디 같은 발상임을 쉽게 알 수 있음에도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곤 한다. (이것이, 음식이나 식습관이 몸의 형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채식을 “품위 있게 식사를 하”(157)는 것으로 얘기한 버나드 쇼의 지적을 인용하는 아담스는 또한 육식을 “야만성”(166)이란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육식이 백인우월주의와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방식이기도 했다는 아담스의 지적에 부응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동막골 사람들이 멧돼지의 행동(멧돼지의 행동은 군인들을 만나면서-즉 군인들의 시선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침입하는 위협이 된다)을 그냥 두는 것이나 다른 군인들의 침입에 대응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을 수동적인 것으로 그리는 이 영화는, 동막골을 지키려는 군인들의 행동에 “비장미”를 선사한다. 그리하여 군인들은 약한 채식자들을 ‘보호’하는 ‘영웅’으로 바뀐다. 군인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별일 없었을 동막골은 군인들의 대리 전쟁터가 되고 뜬금없이 보호 받을 대상이 되는데, “순박한” 동막골을 재현하는 여일(강혜정 분)의 존재와 죽음은 이 모든 것을 상징한다. 하지만 채식이 “품위 있고” “문명”의 상징이라는 말은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해석이며 그것을 더욱더 강화한다.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 혹은 아시아의 어느 지역에서의 “야만”스런 식습관을 통해 유럽 혹은 미국의 식습관을 “문명”으로 얘기하는 방식 속에서, 일부 채식주의자/채식자들이 육식을 “야만”이라고 말할 때, “부재하는 지시대상”은 “유럽적”이지 않은 무엇, “미국적”이지 않은 무엇을 의미한다.

2. 루인은 어떻게 (혹은 “어쩌자고 그 몹쓸”) 채식주의자가 되었나.
1994년 어느 날이었나, 그 어느 시기에 인간“과” 동물/식물들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선, 육식 혹은 어떤 식습관을 폭력으로 느꼈다고, 육식은 관계에 대한 폭력이라고 느꼈다고 그때의 경험을 해석/명명하지만, 그땐 그저 그 모든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사냥을 한다는 것, 죽인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담스의 분석과는 달리 주변엔 관련 책이 없었고(오히려 그 직전까진 모험소설이나 사냥이 나오는 소설을 좋아하기도 했다) 세상에 채식주의자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먹기 위해 죽인다는 것이, 생명을 먹기 위한 도구로 여긴다는 것이 부당하다고 폭력이라고 느꼈을 뿐. “유별난 아이”로 취급될 뿐이었고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은 나 뿐이라고 느끼지도 않을 정도로 채식주의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처음부터 “비건(vegan)”은 아니었는데, 처음엔 단식을 고민했었다. 정말 진지하게 단식을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동시에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래도 무언가를 먹어야겠다고 고민했다. 그러며 우선은 육류를 먹지 않겠다고, 시간에 걸쳐 생선도 유제품도 먹지 않겠다는 전략을 짰다. 지금에 와서 보면 소위 말하는 채식의 “단계”를 밟고 있는 셈이다. 차이라면 지금과는 달리 그땐, 단지 육류를 먹지 않을 뿐 채식주의자라고 스스로를 부르진 않았다(그러니 지금 이런 식의 해석은 그때의 경험을 채식주의 경험의 일부로 전유하고 있는 셈이다). 종종 루인에게 채식주의자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뿐더러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 여겼다. 생선을 먹는데, 유제품을 먹는데 어떻게 채식주의자냐고. 아담스의 주장처럼 비건(“순수 채식주의자”) 만을 채식주의자로 정의한 셈이다. 채식주의자라는 말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대학에 들어온 이후였고, 스스로를 채식주의자 혹은 채식자라고 고민하기 시작한 건, 기껏해야 3~4년 정도다.

드물게 채식 모임에 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몇 년 되셨어요?”라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로 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지금 시간으로) 13년 즈음 되었고 비건이라고 얘기하면, 그 순간 채식 모임에서 루인의 지위 혹은 권력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 된다. 이런 순간들이 싫어 채식을 몇 년 했는지 말하길 꺼려하지만, 10대부터 채식을 했다는 건, 나이에 따라 채식을 다르게 경험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한 중요한 지점이다. 채식을 시작할 당시 생선은 먹었다는 점, 그리고 부산에서 살았다는 건, 채식을 둘러싼 더욱 복합한 지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10대에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가족 혹은 친족들에게서 돌아온 반응은 거칠게 요약해서 두 가지: 10대의 미숙한 충동에 따른 반항일 뿐, 대학가면 그만둘 것이다; 한창 자랄 시기이니 대학 들어가면 해라. 20대에도 채식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응은 대단하다 혹은 독하다. 10대 때의 채식은,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부가적인 노동을 요구했고 그런 노동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에 문제가 있었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 일어나는 감상적인 행동 정도로만 치부되었다. 그래서 그 고민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무엇이었다. 반면 20대가 되면서 이런 반응은 서서히 사라졌는데, 그럴 수 있었던 건, 10대부터 했다는 것 즉 그 만큼 “오랜” 시간 채식을 했기 때문이었다. 즉, 과거가 현재를 담보했다. 하지만 적어도 가족 혹은 친족들 사이에서 루인의 채식을 보증해준 건, 소위 말하는 학벌이었다. 또래 사촌들 사이에서 서울로 유학 간 두 명 중 한 명이었고 그때부터 루인의 채식은 “똑똑하니까”, “신념이 있어서” 혹은 “알아서 잘 할 거다”란 식으로 바뀌었다. 이런 반응들은, 만약 루인이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혹은 부산에서도 소위 “3류”라고 불리는 학교를 다녔다면 루인의 채식은 ‘무식’한 행동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실제 고2까지의 성적이 별로였고 대학입학 이후의 반응이 상당히 달랐다).(첨언참고)

소위 “단계”적인 설명에 따른 채식의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산에 살았기 때문에 좀 더 수월했던 측면이 있다. 잘사는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선은 먹는다는 말은 육류를 먹지 않겠다는 말이 준 파장을 상쇄할 수 있었는데, 그건 항구도시인 부산에서 살았기에 가능한 반응이기도 했다. 만약 바다와 먼 지역 그래서 “어산물”의 가격이 상당히 비싼 곳에 살았다면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을 테니까.

20대 이후 채식이 수월할 수 있었던 건, 자취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생활은 몇 해 전부터 일기 시작한 “웰빙 채식”을 통해 좀더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 육식이 건강에 좋다 혹은 육식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어오다 갑작스레 “채식을 하면 건강에 더 좋다”라는 말과 함께 뜨기 시작한 웰빙 채식에 한편으론 뜨악했다. 음식을 둘러싼 정치경제학을 얘기하고 싶었고 그것을 채식을 통해 말하고자 했지만, 웰빙 채식은 음식을 둘러싼 모든 정치경제학을 웰빙/건강으로 환원해버렸다. 채식을 하면 건강에 더 좋다거나 채식이 인간에게 더 적합하다는 (아담스의) 주장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채식의 건강담론은 음식을 둘러싼 많은 논의들을 지운다는 점에서 육식을 정당화하는 입장과 별로 다르지 않다. 건강담론으로서의 채식이나 육식은 결국 식물이건 동물이건 모두 “음식”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아담스 자신의 논리에 모순이기도 하다).

하지만 웰빙 채식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채식을 하면 몸에 훨씬 좋다”라는 말을 뉴스에서도 떠들기 시작하면서, 가족이나 친족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한다는 말에 부정적이기만 하던 반응에서 긍정적으로 혹은 호의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반응이 채식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무시한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별난 종족”이란 식으로 보는 시선이 덜해진 것만은 사실이고 그래서 좀 더 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근 10년 가까이 “별종”이기만 하던 채식생활이 돌연 “긍정”적일 수도 있는 것으로 바뀌었을 때, 유행처럼 일기 시작한 “웰빙 채식”은 복잡하지만 양가적인 감정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런 채식의 문화 속에 있는 계급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담스를 읽으며 느끼는 불편함 중엔 채식을 통해 경험하는 여러 결들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한 세살 박이 채식주의자가 자신과 엄마가 “불쌍하게 죽은 엄마 동물과 아기 동물”을 팔고 있는 시장 사람들과 만났다고 말한 것을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146)

이 구절을 읽으며 떠오른 건, “순수함”(혹은 “순진함”)이라는 표정 속에 가려진 계급성이었다. 즉, 이 구절의 ‘부재지시대상’은 계급을 비롯한 여러 사회적인 결들이다.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채식 혹은 음식을 둘러싼 정치학을 얘기할 때, 가장 분개했던 말은 “그래도 나는 육식이 좋아” 혹은 “그래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기를 먹어야 해”와 같은 말들이었다. 그 시절, 이 말들은 함께 나눈 모든 ‘대화’를 무위로 혹은 공염불로 만드는 말이었고 그래서 음식을 정치적이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언설이라고 여겼다. 이 책에서 아담스는, 이른바 “밥상의 성별정치학”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음식과 양성체계(“젠더”)의 관계를 지적한다.(이것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성”으로 자란 이들이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기를 먹어야 해”라는 발언을 하는 건, “남성”으로 자란 이들의 그것과 동일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육식 혹은 음식의 성정치는 또한 이 지점을 분석하는 것이지만, 아담스는 이런 지점에선 양성체계를 배제한 체 채식 혹은 육식이라는 측면으로만 접근한다.

동시에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중하층 계급 출신이었다는 점에서(루인이 만난 사람에 한정해서), 이런 말들/욕망들은 단순히 (혹은 정말로)“고기를 먹겠다”란 의미가 아니라 육식 혹은 고기에 담겨 있는 계급적인 경험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3. 그렇다면 식물은 생명이 아닌가요?

채식주의자들은 “식물도 생명이 있다”는 원리론적인 주장에 맞닥뜨린다. 또는 이런 문제를 좀더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식의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먹고 있는 상추와 토마토는 어떤가요. 그 식물들 역시 생명과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쓸데없는 주장을 하찮게 넘겨 버리고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선행 조건이다. (…중략…) “당신은 상추의 고통이 도살 과정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소의 고통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라는 등 좀더 급진적인 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170)

“그렇다면 식물은 생명이 아닌가요?”란 말은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분개하는 질문/반문 중 하나이다. 채식(주의)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이런 반문/질문은 자신들이 경험한 부당함을 드러내는 관용어구이고 이런 질문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지를 공감하고자 한다. 그런데 정말 묻고 싶다. 식물은 생명이 아닌가요?

종종 하는 고민 중에 하나는 채식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어떤 단계를 계획했던 13년 전, 왜 육류를 가장 먼저 배제했을까 하는 점이다. 왜 채식 혹은 채소만 먹는 것은 괜찮다고 느꼈을까. 채식주의란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면서, 소위 채식주의를 분류하는 코미디 같은 단계를 밟아 왔다. “식물은 생명이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쓸데없는 주장”이라고 간주하는 아담스의 반응과 유사하게 어떤 사람은 형평성의 논리로 얘기하기도 한다. 즉, 동물은 인간과 더 교감하고 인간에 더 가까운 반면 식물은 그렇지 않다는 논리이다.(주1) 이런 주장을 접하며, 채식주의 페미니즘 세미나를 했던 사람과 분기탱천했는데, 그 사람의 경우엔 식물과 더 많은 교감을 하며 식물이 좋아서 채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채식사이트에 들어가면 메인화면에서부터 도살장을 찍은 동영상이나 양계장을 찍은 동영상을 전시한다. 아담스 역시 도살이나 죽음과 육식을 끊임없이 연결시키고 관련 글들을 인용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채식사이트에 들어가거나 채식과 관련한 글을 읽기 꺼리는데, 이렇게 고통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이야 말로 동물을 타자화 하는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동물권을 말하면서 동물들이 사육장에서 어떻게 고통 받고 있는지를 전시하는 것은 결국 동물을 타자화하거나 도구화, 대상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식물은 생명이 아닌가요?”란 질문은 사실, 동물권을 주장하고 생명 운운하는 많은 채식주의자들에게 일종의 아킬레스건이다. 비록 상당수의 이런 질문/반문이 채식주의자를 조롱하고 결국 음식의 정치학을 논하지 않으려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이 질문은 무엇을 생명과 생명 아닌 것으로 나누는지, 무엇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혹은 먹어선 안 되는 것으로 나누는지를 묻는 핵심적인 질문이다. 그렇기에 동물권을 주장하는 것 혹은 육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전히 이런 권리를 인간이 가지고 있음을, 인간이 선택하고 분류하고 결정할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반증한다(이런 이유로 “반육식주의자”(151)란 표현은 상당히 정확하다고 느꼈다). “식물은 생명이 아닌가요?”란 질문을 얼토당토 안 한 질문으로 간주하는 건, 결국 여전히 인간이 생명을 결정하는 최종심급인 현 사회의 맥락에 질문하지 않는 방식이다.

4. 관계 맺기: 육식하는 채식주의자(vegan)란 상상력을 모색하며
아담스의 논의는 한편으론 육식과 “남성성”의 관계를 설명함으로서 육식의 양성정치학에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유사한 서사과정을 얘기하면서도 이것의 유사성을 얘기하는 만큼이나 이것이 징후하는 지점과 이렇게 유사한 서사를 계속해서 생산하는 맥락은 말하지 않고 있다. 1970년대, 1980년대 미국의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의사 앞에서 자신의 생애를 구술하며 “천생”[born to]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mtf/트랜스여성일 경우, 자신들이 기억도 안 나는 어릴 때부터 “여성”으로 느꼈다고, 자신이 “여성임”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외부성기를 혐오한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결국 밝혀졌듯, 이런 서사들의 상당수는 의료담론에서 요구하는 방식에 맞춘 것이었다. 어떤 규범적인 서사에 맞춰 얘기할 때에만 “진성 트랜스젠더임”을 ‘승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채식주의자들의 유사한 서사 과정이 의미하는 바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채식주의를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고의 문제로 끌고 가는 아담스의 논의는, 결과적으로 음식을 둘러싼 정치경제학적인 맥락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채식주의는 단지 무엇을 먹고 먹지 않고의 문제인가? 만약 채식을 하면서 여전히 음식물 “쓰레기”를 상당히 만들어낸다면 그럼에도 “윤리”적인가? 도대체 왜 “완전 채식”만이 “채식주의”인가? “완전 채식”을 하기까지 경험하는 많은 채식주의자들의 어려움과 고통은 단순히 육식 위주의 문화적인 배경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채식주의자는 이러이러해야 해”라는 채식주의 내의 어떤 규범적인 틀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그래서 무엇을 먹고 먹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음식을 “관습”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적인 논쟁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고 있다. 나이나 계급, 지역, 인종 등에 따라 음식과 맺는 관계 방식이 다를 때, 채식이 더 윤리적이란 방식 자체가 특정 집단의 인식에 토대하고 있는 것일 때, 생명으로 구분하고 결정하는 구조 자체를 질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이 단지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구조, 권력을 질문하는 것이라면, 이 지점에서 채식주의와 만나는 것이 아닐까.

주1) “나에게 있어서 평등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평등이지, 하한선을 기준으로 삼는 억압의 평준화는 아니다. 평등의 가치는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지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식물은 분명히 생명이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도 생명이다. 어차피 같은 생명이기 때문에 모두 살려야 한다는 말이나, 모두 죽여도 된다는 말이나, 극단적으로 추상화된 발언이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 애완 동물, 화초 등은 나와 무관하게 느껴지는 행인, 횟집의 물고기, 슈퍼마켓의 상추와는 다르게 경험된다. 이 경험을 무시하고추상화된 평등의 가치를 고집할 수는 없는 법이다. (…) 식물들에게도 생명이 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어하는 동물의 처절한 몸짓과 피 흘리는 동물의 시체를 볼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밭에서 감자를 캘 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다.” 정고미라, “육식에 대한 또 하나의 시각” (2003:137-139)
_M#]

[#M_ 첨언.. | 첨언.. |
채식과 학벌 혹은 학력이 밀접할 수 있음, 반드시 동일하게 연결되지는 않지만 학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던 건 루인의 고등학생 시절까지의 생활에 대한 부가설명이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의 경우, 종종 고등학생 시절 학교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강제적으로 공부를 시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얘기를 하는데 루인에겐 이런 경험이 별로 없다. 부산에 소재한 인문계 고등학교 중에서, 모의고사를 치면 뒤에서 1, 2등을 다투던 공립고등학교를 다녔었다. 여기서 공립고등학교를 다녔다는 것도 중요한데 사립의 경우 강제적으로 공부를 시키는 경우가 많은 반면, 공립은 선생들이 4~5년 정도 머물다 떠나는 곳이다. 더구나 루인의 고등학교가 공부를 못하는 곳으로 알려진 이상 학생들이 공부를 못해도 별로 간섭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저 자율학습시간에 조용히만 있으면 별로 개의치 않는 그런 분위기. 이런 고등학교를 다니며 반에서 10등 안팎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당시 루인의 어떤 행동도 집에선 무식하고 어리석은 10대의 반항 정도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언제나 “엄마의 친구 딸, 아들”은 전교 수석에 성격도 좋은 사람들 뿐이기에(그들은 언제나 초인들이다 -_-;; 근데 분명 루인도 누군가의 “엄마 친구의 딸, 아들”일 텐데 … 흠… ;;; ) 더욱더 비교되었다. 고3이 되어서야, 집에서 탈출하겠다는 일념으로, 부산만 아니면 어디라도 가겠다는 다짐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수학이 루인을 살려 부산 탈출. 어쨌거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순간, 채식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확연히 바뀌었다. 물론 같은 대학의 사람들에게선 여전히 채식이 “별난” 행동이었다. 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