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퀴어”란 행사가 있습니다.

오는 토요일에 한국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에서 페미니즘과 퀴어란 이슈로 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네.. 저도 발표합니다;;; 지금 이 원고 쓰느라 고생이랄까요.. ㅠㅠ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한 적이 몇 번 있긴 하지만 이번처럼 어려운 적도 없네요.
(사실 매번 어려움. 크. ;;;;; )
제 주제는 트랜스젠더 괴물, 재생산 권력, 그리고 외모/몸입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바탕으로 글을 썼고요. 외모 해석과 재생산하는 몸, 그리고 젠더가 어떻게 관련 있는가를 다뤘는데… 망했습니다. ㅠㅠㅠ
읽을 수는 있어도 발표는 할 수 없는 그런 글을 썼습니다.. 아아.. 망했어, 망했어.. ㅠㅠ
==========
한국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 2011년도 봄 학술대회
페미니즘과 퀴어
일시: 2011년 4월 16일 토요일 오후 1시
장소: 연세대학교 삼성학술정보원 장기원 국제회의실 (6층)
발표1 페미니즘, 레즈비어니즘, 퀴어 이론, 트랜스젠더리즘 사이의 긴장과 중첩 by 지혜 / 토론: 최성희
발표2 필립 시드니의 Arcadia와 르네상스 동성애 담론 by 이나경 / 토론: 김선형
발표3 멜빌의 청년들: 퀴어한 결혼과 남성적 성장 by 윤조원 / 토론: 김진경
발표4 트랜스젠더, 괴물, 그리고 의료기술: 섹슈얼리티 위계와 근대적 인간-몸의 생산 by 루인 / 토론: 장정희
발표5 Liberal Homosexuality in Cold War America: Racial Integration and Gendered Citizenship in John Okada’s No-No Boy by 황정현 / 토론: 윤성호

사고쳤는데 성공? + 트랜스페미니즘 모색

01
며칠 전 2010년 결산 글을 쓰면서, 여이연 홈피를 링크(http://goo.gl/VQv4g)했다. 글이 실린 이번 호 소개글 겸 머리말이 있어서였다. 특집 주제는 이곳에 오는 분도 관심이 많을 듯해서 뻔뻔하게 링크했지만, 내용은 나중에 확인했다. 글을 읽고 재밌더라. “이러한 의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담고 있는 글”로 나의 글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즈음 원고청탁을 받았다. 그때 기획의도는 대충 1990년대 이후 성정치 맥락에서, 앞으로는 어떤 이슈를 어떤 문제의식으로 고민하면 좋을지를 나누는 지면을 마련한다고 했다. 답장에도 적었지만, 정확하게 내가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 아울러 기획의도가 정확하게 와닿지 않았다. 무엇을 하려는 걸까? 뭔가 알 것 같긴 한데, 정확하게 잡히지 않는 상태였다.
내가 둔한 탓도 있거니와, 기획의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탓하는 건 아니다. 이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많은 경우, 기획의도는 시작할 때가 아니라 끝날 즈음 명확해진다. 처음부터 기획의도를 매우 명징하게 설명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슨 글을 쓰면 좋을까요,라고 다시 물었고 답을 들었다. 꽤나 명확한 내용이라 그 요청대로 글을 구상하다, 막판에 글의 방향을 틀었다. 하하. 지난 글(https://www.runtoruin.com/1738) ㄴ에도 적었듯, 지금 시점에서 해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깨달았달까. 그래서 글을 쓰며 많이 걱정했다. ‘괜찮을까? 나 혼자 엉뚱한 글을 쓰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나의 글을 소개한 구절을 읽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사고쳤는데 그게 성공한 격이랄까? 크크. 암튼 여/성이론 측에 누를 끼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02
여/성이론에 실은 글은 트랜스페미니즘을 모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아직 미흡하지만 나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어서, 나 혼자 좋았던 부분이 있다. 물론 내가 읽지 않은 어느 누군가가 이미 다 했던 말이겠지만. ㅠㅠ
지배규범은 소위 규범적이라고 믿는 이들의 행동을 설명하지 않는다. 비규범적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지배규범을 실천하는 이는 규범적이라고 믿는 이들이 아니라 비규범적이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미디어에서 떠드는 남성성 규범과 소위 아저씨라고 불리는 이들이 실천하는 남성성 규범의 간극을 떠올리면 어렵지 않은 얘기다. 아울러 젠더가 정말 문화적 구성과정이라면, 트랜스젠더 이론과 페미니즘 이론이 젠더 정치로서 어떻게 접점을 모색할 수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무려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ㅠㅠ
나의 입장에선 뻔한 얘긴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읽을는지…

이런 저런 얘기: 슬픔, 낙태 논쟁, 양희은

당고 댓글을 읽고 반성하며… 사실 항상 뭔가를 써야 하는데 하는 부담은 있었지만 살짝 방치했다는… 뭐, ‘목하 열애'(응? 크크크) 중이니까. 으하하;;

01
며칠 전, 눈이 내리던 날 알바를 끝내고 玄牝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심성락을 들었다. 수은등은 창백하고 또 흐렸으며, 바깥은 어둡고 또 김이 끼어 흐릿했다. 심성락의 아코디언은 바람의 소리를 내며 애잔했다. 나는… 장의차에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움직이는 관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어떤 불길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엄청난 죄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니다. 나는 그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고 믿었지만, 이런 선택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슬퍼하고 있었다.

02
다른 한편, 누군가와 얘기를 하다가, 나는 뜬금없이 프로라이프(pro-life)가 되었다. 그 분은 생명이 소중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소중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이 되었다. -_-;;

물론 이 상황에서 나는 논쟁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과는 논쟁이 어렵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꽤나 피곤한 상태였고, 논쟁이 불가능한 사람과 논쟁하는 건 시간낭비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예, 예”라는 말만 반복했다.

갑갑한 건, 생명 vs 반생명(선택)이란 이분법 구도였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에서 생명이 소중하지 않다고, 생명이 귀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책은 없다. 그런 페미니스트도 없다. 생명과 선택이란 이분법이 아니라, 낙태가 어떤 맥락에서 발생하는지 이해해야 하고, ‘여성’만을 비난하고 가해자로 내몰면서 ‘남성’은 부재중으로 만드는 구조를 비판하고, 태아를 초월적인 절대적 주체로 여기고 여성을 ‘인큐베이터’로만 대하는 언어의 한계를 지적하고, 모든 여성은 이성애자고 결혼해서 어머니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에 문제제기한다. 등등. 간단하게 말하면 복잡한 현실을 복잡하게 고민하자는 건데, 소위 프로라이프라고 자처하는 집단은 모든 상황을 매우 단순하게 만들어 버리며 책임지지도 못할 말들만 화살처럼 쏘아댄다.

근데 좀 웃긴 건, 방송에서 프로라이프를 자처하는 분들의 발언을 듣고 있노라면, 그 논의에서 어떻게 낙태반대란 결론이 나올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논의 과정만 들으면 선택권을 지지할 거 같은데… ;;

03
아침마다 양희은 씨의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그리고 매번 놀란다. 양희은 씨의 발언이 멋져서. 물론 그동안 내가 양희은 씨를 비롯하여 공중파 방송 진행자에 대한 편견이 있긴 했다. 그들은 젠더 권력 관계의 문제에서 “참고 살라”며 ‘여성의 인고’를 강조할 것이라는 어떤 편견. 성교육강사라면서 여성에게 조심할 것을 요구하는 말도 빈번했으니까.

근데 양희은 씨는 달랐다. 3.8 여성의 날을 지지하고 낙태 논쟁에서 여성의 선택권과 남성의 부재를 지적하는 발언을 방송 서두에 말하는 건 기본. 며칠 전엔 여성도 아내가 있다면 직장 생활을 비롯하여 일을 매우 잘 할 수 있다고, 남편/남성은 회사 일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아내/여성은 사회적 조건이 다르고 회사 생활과 가사 노동 등의 여러 일을 동시에 책임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지적하더라. 언젠가는 왜 여동생이 오빠의 밥을 챙겨주느냐며 오빠가 여동생의 밥을 챙겨주는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성은 누나여도 여동생이어도 남자 남매의 밥을 챙겨줘야 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했던 말. 공동진행자가 뭔가 좀 이상한 말이라도 할라치면 능숙한 언변으로 바로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는데.

라디오를 들으며, 감탄 또 감탄. 한계가 없진 않(겠)지만, 공중파 방송이라는 맥락을 감안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04
결국 이 모든 글도 트위터로 메모한 걸 정리했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