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체인질링

[체인질링] 2009.02.10. 15:45. 아트레온 4관 7층 H-5

내가 이 영화에 기대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영화관을 나서면서, 보고 싶은 영화라고 떠들고 다녔던 이 영화의 뒤끝이 찝찝함이란 걸 곱씹으며,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는 왜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극장에 가길 기대했던 걸까?

※스포일러 가득할 가능성이 농후함. 좋다, 별로다와 같은 평가 역시 그 자체로 스포일러란 점은 별개로 하고.

줄거리는 간단하다. 1928년, 크리스틴 콜린스(안젤리나 졸리 분)은 어느 날 직장에 갔다 왔더니 아들, 월터가 사라진 걸 깨닫는다. 경찰에 연락하고 아이를 찾지만 감감무소식. 그런데 다섯 달 뒤 경찰은 월터를 찾았다고 연락한다. 하지만 경찰이 데려온 아이는 월터가 아니다. 경찰은 월터라고 주장하고 콜린스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찰은 공권력을 이용해 명목상 콜린스가 자신의 아이를 못 알아보는 상태라며(하지만 사실은 경찰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콜린스를 정신병원에 감금한다. 그러다 누구도 모르던 아동 연쇄살인 사건이 우연히 드러나고 납치된 아동 중에 월터가 있다는 게 밝혀진다. 이제 청문회가 열린다. 월터가 아닌 아이를 월터라고 주장한 경찰은 정직 처분.

01
월터가 아니지만, 경찰의 명령 혹은 요청에 의해 월터 역할을 해야 했던 아이는 영화 내내 어정쩡한 존재로 등장한다. 크리스틴은 진짜 월터가 아니란 이유로 박하게 대하고, 경찰은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다며 아이의 상황을 회피한다. 이 상황에서 화가 났다. 당시 아동의 위치가 저랬을까 지레짐작하기도 했고. 20세기 초반이면 아동기가 형성되던 시기지만, 모든 아이가 적절한 환경을 향유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적잖은 아이들은 노동착취의 대상이었으니까. 그래서 적절한 계급/계층의 아이가 아니면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 아이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안 나온다. 마지막에 경찰이 밝히는 이름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이름이 그 아이의 이름인지, 경찰이 또 다시 조작한 이름인지는 모호하다. 경찰은 아이의 진짜 엄마를 찾았다며, ‘모자상봉’이란 쇼를 연출하곤 수습하기 급급할 뿐이다. 아이는 엄마로 소개된 이 앞에서 낯선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 부모가 찾지 않는 아이는 이름조차 가질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월터를 대신할 아이가 등장할 때, 아버지라는 존재와 같이 등장하긴 한다. 그가 진짜 아버지인지 우연히 만난 동행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느 쪽이건, 월터를 대신한 아이에게 부모가 부재하는 건 마찬가지다.)

02
사실 이 영화, 모성과 의료과학의 대립이란 구도를 만들어가는 부분은 꽤나 재밌었다.

이 영화의 매력이라면 국민국가를 형성하고 이를 공권력으로 유지하는데 의료과학이 어떻게 영합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의료과학이란 권력에 무관한 ‘객관적 사실’의 기술이 아니다. 모든 과학(과 지식)은 특정 권력(자본이건 정치권력이건 뭐건 간에)에서 자유롭지 않다. 경찰은 월터를 대신할 아이를 데려왔지만, 그 아이는 월터보다 키가 3~4인치 정도 작고, 월터가 하지 않은 포경수술을 한 상태였다. 콜린스는 이를 근거로 해서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자 경찰 자문위원으로 있는 의사는 아이가 충격을 받으면 드물지만 키가 줄어들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포경수술은 유괴범이 아이의 위생을 위해 해준 거라고 주장하고. 궤변이어도 의료과학이란 어떤 권위가 그 말을 담보하는 이상, 그 말은 ‘사실’이 된다.

경찰이 콜린스를 정신병원에 감금시키는 명목은 자신의 아이를 못 알아본다는 점, 즉 모성의 부족이다. 그러니 경찰과 정신과 의사는 정신병원에서 충분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결론은 결국 모성이 공권력을 이긴다는 것. 영화는, 엄마라면 자신의 아이가 진짜 자신의 아이인지 아닌지 알아 볼 수 있다는 본능으로서의 모성을 주장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론에 다다르면 짜증이 잔뜩 밀려온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또 이거였어?

사실 영화 중간, 크리스틴의 주장과 경찰의 주장, 정신과 의사의 주장이 대립할 때 내가 기대한 건 따로 있었다. 근대 의료과학, 국민국가의 형성, 모성의 발명의 밀접한 관계를 폭로하는 영화이길 바랐다. 영화는 이 셋의 담합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내용을 충분히 담고 있다. 그럼에도 본능으로서의 모성을 얘기하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03
첨엔 영화의 제목이 난감했다. “체인질링”을 도전으로 해석한다면 무엇에 도전하는 건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부패권력에 도전하긴 하지만 국민국가의 정치권력 자체엔 도전하지 않으며 또 다른 정치권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본능으로서의 모성을 강화하는 인상이다. 하지만 모성을 본능으로 이해하는 인식에 도전하기보다는 모성을 본능으로 이해하기에, 모성을 본능으로 주장하는 의료과학과 국민국가에 ‘저항’할 수 있다. 바로 이 역설 아닌 역설이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도전이다. 모성은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를 그대로 사용해서 그 주장을 펼치는 이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 하나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가 그 제도를 위태롭게 만드는 역설이 영화 속 도전인 것.

콜린스가 매력적인 인물이라면, 부패한 경찰과 부패를 폭로하는 목사 모두에게 저항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은 경찰의 비리를 폭로하는 목사. 그는 기존의 정치권력에 저항하는 듯하지만, 사실 부패경찰이 존재해야만 자신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콜린스가 자신의 아들이 죽지않았다고 주장할 때, 경찰을 너무 옥죄면 반동할 테니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적절한 선에서 비리를 폭로하면 경찰도 자중하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면 경찰들이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모른다는 목사의 충고는, 목사가 자신의 정치학을 분명하게 밝히는 점이기도 하다. (이것이 진보연하는 사람들과 보수연하는 사람들의 관계이지 않을까?) 부패한 경찰, 그래서 비판할 대상이 없다면 목사의 진보연하는 정치학은 성립할 수 없다. 그러니 목사는 부패한 경찰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콜린스는 어느 선에서 멈추지 않고 끝까지 밀고 간다. 아이를 찾는다는 점을 모성애라는 측면에 한정하지 않고, 제도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서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진보와 보수라는 구도 속에서 논쟁이 발생할 때에도 지키는 어떤 선, 민주와 독재라는 구도 속에서 충돌이 발생할 때에도 지키는 어떤 선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목사가 어느 시점에서, 콜린스에게 월터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충고한 것처럼, 경찰을 너무 곤혹스럽게 하지 말라는 뉘앙스로. 하지만 콜린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확인이 필요하지만) 목사의 제안을 콜린스가 거부한 이후로, 영화에 목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부패경찰과 목사(와 그의 교회) 간의 대립관계를 넘어서는 정치학에서 목사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고 존재할 수 있는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04
이 영화를 시작할 때 “The True Story”라는 자막이 나온다. 영화를 홍보하는 팜플렛엔 “실화”라고 적혀 있다. 텍스트에다가 실화라는 설명구절을 붙인다는 건, 아무래도 웃음이 나는 일이다. 소재가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는 건 알겠지만, 재현, 기술, 서술하는 순간부터 ‘실화’란 존재할 수 없다. 그냥 “진짜 이야기” 혹은 “진실한 이야기”라면 수긍하겠는데. 흐흐.

6 thoughts on “[영화] 체인질링

  1. 이 영화, 그다지 보고싶지는 않아서 루인 님 쓰신 글을 다 읽었는데요. 흥미로운 해석이었습니다~ (영화 내용은 다 아는지라;)

    1. 사실 전 영화 내용을 잘 모르고 극장에 갔어요. -_-;; 예전에 어느 영화 내용을 소개하는 프로를 우연히 봤다가 어떤 설명에 끌렸거든요. 근데 굳이 극장에 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흐흐.

  2. 헤헤…루인님 글 읽고 내용 파악 완료~
    극장 안가도 됩니다 이제 ㅎㅎㅎ

    1. 흐흐흐. 혜진 님이 직접 본다면 또 다른 느낌일 지도 몰라요. 헤헤. 다만 이 영화는 굳이 극장에 갈 필요가 있을지엔 의문이라서….. 크크

  3. 벤자민 버튼은 보고 싶은데, 제가 사는 동네의 극장에선 안하네요;; 트랜스포머나 다이하드는 꼬박꼬박 상영하면서 말이죠. 그냥 사랑이야기라면 보고싶지 않은데, 고민중이에요.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개념은 정말 모든게 새롭잖아요. 모든게 엇갈리고. 그런느낌이 궁금해서…개봉날 기다렸더니만…….극장이 나빴어요 ㅠ_ㅠ

    1. 저도 그 영화 보러 조만간에 극장에 가려고요. 근데… 혜진 님 사는 곳 근처 극장에선 안 한다니…ㅠ_ㅠ 정말 극장 나빠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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