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트리샤 콘웰, 『흑색 수배』

내가 내게 가지고 있는 편견 중 하나. 나는 추리소설은 좋아하지만 영미권 현대 추리소설, 특히 소위 하드보일드라고 말하는 추리소설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건 1800년대에서 1900년대 초반의 영미권 추리소설과 현대 일본에서 나온 추리소설들이라고 믿었다.

몇 달 전 어느 책에서 영미권 하드보일드를 분석한 글을 읽었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을 분석하는 글은 아니고, 자신의 주장을 위해 추리소설의 일부를 인용하고 분석한 글이었다. 그 글을 읽자, 영미권 현대 추리소설도 읽으면 재밌겠다 싶었다. 헌데 몇몇 유명한 이름을 제외하면 아는 작가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숨책에 갔는데, 우연인지 인연인지 퍼트리샤 콘웰(Patricia Cornwell)이란 낯선 작가의 작품이 여럿 들어와 있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마침 관심을 가질까 하는 분야라 일단 『흑색 수배』 두 권을 샀다(1책 2권). 그러고도 미뤘다. 막연히 재미없을 거란 편견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이거 …, 정말 재밌다! 한 권의 책을 고르면, 그 책만 붙잡고 읽으면 좋으련만 난 성격이 이상하여 한 번에 두세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경향이 있다. 매일 일정 분량을 읽는 책, 상황에 따라 읽어야 하는 책 혹은 논문, 그리고 읽고 있는 소설책, 그 소설책을 읽는 중간에 읽는 또 다른 소설책. -_-;; 소설책은 보통 밥 먹을 때, 잠들기 전, 가끔 시간이 어정쩡할 때 읽기도 하고, 한두 시간 시간을 내서 읽기도 한다. 이렇게 읽다 보니, 가끔은 내용 연결이 잘 안 되고, 집중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근데 『흑색 수배』는 읽으면 그냥 바로 그 순간부터 집중이 되는 거다! 이건 이야기의 힘이다. 번역의 힘도 무시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재밌으면 띄엄띄엄 읽어도 상당한 흡입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작가의 책을 처음부터 다 읽겠다고 다짐했다.

소설을 읽으며, 추리소설 혹은 법의학 소설로서도 재밌지만 이 소설엔 또 다른 흥미로운 내용이 등장한다.

잘난 동생이 한 마디 던졌다. 나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문을 잠갔다.
“샌더스 부부, 조의 부모 말이야, 아주 좋은 사람들이었어. 루시와 조의 관계를 알까 봐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몰라.”
내가 운전하는 동안 도로시가 말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말했어, 도로시?”
“뭐, 별말 안 했어. 난 그들이 알고 있는 줄 알았어. 그래서 몇 가지 적절한 암시만 했지. 근데 여긴 마이애미 하늘하고 왜 이렇게 달라 보이지?”
동생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어쨌든 얘기를 나눴어. 잠깐 동안. 제리 폴웰(보수적인 기독교 우파를 창시한 목사 – 역자) 스타일이라 레즈비언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 같더라.”
“그런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흥, 레즈비언 맞잖아. 터키 해안, 그러니까 에게 해의 레스보스 섬에 살던 아마존 타입들한테서 유래한 거 아니우? 그래서 터키 여성들한테 그렇게 털이 많은 거고. 그거, 알고 있었어?”
“넌 사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긴 하니?”
“물론 그 남자에 대해 들어봤고말고.”
“그 남자가 아니라 그 여자야. 사포는 레즈비언이었어. 왜냐면 레스보스 섬에 살았으니까. 고대에서 가장 위대한 서정시인 중 한 사람이었어.”
“하! 보디 피어싱을 한 사람이나 덩치 큰 하키 선수들이 잘도 시적이겠다. 샌더스 부부는 확실히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루시하고 조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 그냥 지금은 조가 엄청나게 다쳤기 때문에 루시도 회복된 후에나 그 앨 봤으면 하는 생각밖엔 없더라. 동정심도 아주 많고 친절했어. 병원에서 루시를 만났을 때도 정말 친절하고 호의적이더라고.”
-2권 83-85쪽

주연급 조연이 레즈비언인데, 이것만으로 흥미를 끈 건 아니다. 이 책이 미국에서 나온 건 1999년인데, 당시의 미국에서 레즈비언 혹은 동성애가 소비되는 한 가지 방식을 읽을 수 있어 재밌었다. 레즈비언 혹은 동성애에 가지는 편견부터 다양한 이해 방식 등등이 소설의 내용과 적절히 잘 어울린다. 특히, 동성애에 어느 정도 편견이 있는 사람과 레즈비언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모순이 아닌데도, 종종 모순처럼 여기는 분위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동성애혐오, 트랜스혐오 발언을 빈번하게 한다는 것과 그 사람이 트랜스젠더나 비이성애자와 친밀하게 지내는 것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

+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이 한 또 다른 고민. 이 책은 퀴어 아카이브에서 수집해야 하는 책일까, 있으면 좋지만 반드시 수집할 필요는 없는 책일까, 없어도 그만인 책일까? 요즘 하는 일 때문에,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이런 고민을 한다. 흐흐.

++
이 글을 쓰고 나서 구글링을 했더니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후후. 하지만 여기에선 생략.

10 thoughts on “퍼트리샤 콘웰, 『흑색 수배』

  1. 패트리샤 콘웰 재밌죠. 스카페타 캐릭터 시리즈로 한 열권 나왔을 걸요? 저는 다 본 것 같은데… ^^; 저는 비행기 탈 때마다 추리소설을 보기 때문에 많이 보는 편이에요. 근데 한 7권째부터인가는 좀 재미가 없어져요. 미국 탐정소설도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그 중에 새라 파렛스키가 아무래도 페미니즘 취향에는 맞는데, 사실 마이클 코넬리 같은 사람도 엄청 재밌죠.

    1. 정말, 밤에 읽고 있으면 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예요. 헤헤.
      콘웰 소설을 읽고 나서, H님의 예전 글이 떠올라 다시 찾아 읽고 싶었는데… 검색 기능이 없어서 아쉬워 하고 있어요. 헤헤
      (이글루스 검색 기능은, 내부 검색 기능을 설정하면 외부에서도 검색이 된다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아쉽달까요…;;)

  2. 콘웰과 양대 산맥이라는 수 그라프튼을 아나요? 전에 일다에도 언급되어서 상담소 소설모임에서 읽었는데 재미나더군요. (근데 엉성해요!ㅋㅋㅋ) 더 읽어보고픈데 막 절판되고 그래서 구하기 쉽지 않아요;ㅁ;

    1. 영이 현대 추리소설은 거의 몰라서.. 처음 듣는 이름이에요… 흐흐. ;;;
      재밌다니 한 번 찾아 봐야겠어요. 근데… 엉성하다는 말에 멈칫한달까요… 흐흐

  3. 수 그라프튼은 알파벳 소설을 쓰는 사람인데… 잘 기억은 안나지만, A for Alibi 이런 식으로 지금 아마 S 까지인가 더 나왔나 그럴 거에요. 콘웰하고는 스타일이 다른데 알파벳 시리즈라는 거 빼고 사실은 그냥 평범한 추리소설이에요. 다 좀 엉성하고요. ^^; 콘웰이 훨씬 긴박감이 있지요.

    1. 오홋. 알파벳 소설을 쓴다니 왠지 흥미로워요. 아이디어 자체가 신선하달까요… 근데 평범하다니… 일단 다음에 헌책방에 나오면 훑어 보고 결정해야 겠어요. 헤헤.
      콘웰은 확실히 처음부터 읽고 싶다는 욕심을 불러 일으키는 작가같아요. 🙂

  4.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과 레즈비언이 친밀할수(사귈수!) 있다는 말씀에 정말 공감해요. 이성애가 주류인 사회에서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눈치를 살피거나(동성애 편견이 전혀 없는 사람 앞에서도 편견을 스스로 가정할 수있져), 혹은 내면화한 습관 때문에요. 그런 점에서 이름붙이기, 레즈비언이라 명명하는게 저로서는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요.(실제로 전문가님께서 어떻게 보시는줄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저의 경우 여친이랑 불화가 깊은 바람에(대개는 제가 가진 문제였어요) 사방팔방 민폐를 끼치면서도 사과할 정황이 없었다는.ㅎㅎㅎ

    참, 복잡다단한? 정체성의 집합체인 한 개인과 단지 ‘동성애자’로서의 개인에 대한 평가/발언은 분명히 구분되어 전달되어야 할것 같아요.오해를 불러올수도 있거든요. 결국, 상호 신뢰 문제지만.

    1. 마지막 구절이 유난히 좋아요. >_< 헤헤. 한 개인을 동성애자로, 트랜스젠더로 수렴할 수 없기에 어떤 개인에 대한 판단은 매우 제한적인데, 마치 그 사람의 일생을 싸잡아 비난하는 경우엔 매우 당혹스럽더라고요. 근데 신뢰의 문제라 더 어려운 거 같기도 해요. 🙂

  5. —–>참,(뜬금없이)!! 여친이랑은 워낙 이견이 많았던 터라 한달전쯤 끝났어요. 저의 경우 손잡고 있더라도 다른 곳을 보자 하는 사람인데, 여친은 같은 곳을 볼수 없으면 손잡을 수 없는 강고한 사람이라서요. 해서 요즘은 지나가는 예쁜 분들을 보면 눈을 희번덕거리게 된다는… ㅋㅋ 그런데 저는 왜 남의 블로그에서 이런말을 하고있는 걸까요. ㅎㅎㅎㅎ.
    요즘 고민이 개인의 사생활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지, 상대가 원하는지 아닌지의 문제라서일거에요. 저의 자유, 기우, 귀찮음과 무관하게 어쩔수 없이 오픈해야만 하는, 그것이 ‘책임’과 연루되어있는 상황이 있단걸 배웠거든요. 불가피하게 민폐를 끼치게 될 때인데, 워낙 관계에 미숙한 사람인지라 사실 아직도 어쩔줄 모르긴해요. 뭐 혼자서 10000명의 말에 귀기울여야할때는 조심스러울수밖에 없겠지만요.
    이건 뚱딴지 이야기인데, 동시에 여러 사람을 사랑할수도 있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어요. 시기하지 않고, 나눠도 줄거나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요. 물론 그렇다해도 자원에는 한계가 있으니 멋있는 우리 여친에게 해줄 수 있는것은 아주 미미했을 거예요. (그래서 일부일처제?ㅎㅎ) 이자리를 빌어서 자랑좀 하자면, 저의 ex-여친 정말 짱이었어요!!ㅎㅎㅎㅎ (도망을 잘다녀서 그렇지)

    물론 저의 이러한 심적 상황이 3일 뒤에는 저조차 낯설어 질 수 있으리란걸 알아요.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러한 삶을 이해할 수 없다 하시는 분께는 본인께서 이러한 삶을 살지 않으면 된다고 살짝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람이 같을수 없고, 미래는 모르는거니까요. 그리고 누구보다 본인만큼 교통정리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사람들의 인생관, 사랑관이 몹시 다르니 ‘다름’을 눈감아 줄 수 있는 우정이나 사랑, 이런 기반이 탄탄하지 않다면 관계란것은 날마다 충돌하고 정말 피곤해질듯해요. 배려와 도움을 제공한것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때에도, 원망보다는 더 중요한것에 감사해야 할것 같고요(이걸 못해서 사람을 잃는다는)

    암튼,, 민폐에 대하여 사죄한다는것이 뜬금없이 루인님께 민폐를 끼치는 꼴이 되어버렸네요.
    루인님, 부디 무례를 용서하시고, 이 댓글 살짝 넘어가주실래요?

    1. 서로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만났을 때, 가치관부터 생활 방식까지 많은 부분에서 충돌한다면 그게 너무도 당연한데, 같을 거란 기대가 상당해서 쉽지 않은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떤 땐, 같을 거란 기대를 버리고 서로의 다른 인생관, 사랑관으로 얘기를 나누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거 같고요.

      근데, ex-여친 자랑은…. 흐흐흐.
      왠지 “말썽말썽 레즈”은 멋진 분일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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