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오픈!!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이 홈페이지를 오픈했습니다. 이제 본격 시작입니다 … 만;;;

암튼 홍보전단지에 적힌 내용을 살짝 옮기자면

퀴어락은 성적소수자와 관련된 국내외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기록물을 수집, 정리, 보존하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상으로 누구나 검색, 열람, 이용, 교류하는 것을 꿈꾸는 비영리 공공 아카이브입니다.

아카이브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 자료를 모아 둔 정보 창고”입니다.
아카이브가 도서관이나 박물관과 다른 점은 모든 책, 역사적 유물만을 모아 전시하거나 열람하게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의식을 갖고 관련된 기록물들을 모은다는 점입니다.
이런 이유로 최근 사진 아카이브, 소리 아카이브, 민속 아카이브 등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처음 아카이브는 ‘저장 창고’의 의미였을지 모르지만, 퀴어 아카이브는 단순한 기록보관소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모으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입니다. 한국의 퀴어들의 자긍심과 즐거움을 위해 움직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찾고, 담고 그리고 느끼는 공간으로서의 아카이브가 될 것입니다.

퀴어락은 3개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9년은 도서, 문서 및 영상물 DB구축, 홈페이지 오픈, 2010년에는 사진 및 박물류로 범위를 확장하고 기증 등 자료 수집에 주력할 것입니다. 2011년에는 음원, 웹아카이빙, 기존 기록물의 디지타이징을 비롯 퀴어락 구축 과정을 담은 백서를 발간하여 아카이브 구축에서 활용까지의 모든 정보가 공유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KSCRC는 이런 본격적인 아카이브 개발을 위해 2002년부터 기초다지기를 해왔고,
드디어 2009년 12월 21일 공식 오픈과 함께 문을 활짝 열고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퀴어락은?
한국퀴어아카이브(Korea Queer Archive)의 애칭!! 이는 Queer+Archive를 조합한 ‘Queerarch’를 발음대로 읽은 것이기도 하지만, 한자의 ‘즐거울 樂’이란 의미를 담아 퀴어의 즐거움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홈페이지 주소는 www.queerarchive.org 입니다.
많은 방문과 활용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내용 기록에서 오탈자를 비롯한 잘못된 부분도 적잖을 것입니다. 발견하시는대로 알려주시면 매우매우매우 감사!!!
(메일 kscrcqueer@naver.com으로 보내주시면 될 듯?)

거인들에게: 자료찾기, 공유하기

특정 주제의 자료를 찾기 위해선 도서관이나 검색사이트에서 주제어를 입력해서 검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같은 시대엔 이 정도만 해도 웬만한 자료는 찾을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이전의 자료는 그렇지 않다. 언론사 중, 여유가 있는 곳에선 과거 기사도 검색할 수 있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모든 언론사가 그런 건 아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직접 책을 한 권, 한 권 뒤적이며 목차를 확인하고 내용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직접 움직여 자료를 찾다보면 예상하지 않았던 곳에서 중요한 자료가 나온다. 심심해서 꺼내 뒤적이던 책에서 그토록 찾던 자료가 나온다거나, 설마하며 목차를 확인했는데 대박 자료가 나오는 식이다.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는데, 그 동안 추측만 하고 있던 내용이 구체적인 사실로 나오는 식이다. 온라인 검색이 나의 일부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식 검색을 사랑하는 이유기도 하다.

어젠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을 하고 입양을 했다는 내용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것은 미국이나 다른 외국이 아니라 한국 상황. 레즈비언 부부도, 마을 주민들도 별스럽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이런 자료는 찾으려고 작정한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자료가 아니라 우연과 행운이 절묘하게 만나야 한다.

이렇게 자료를 찾고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그동안 흩어진 자료에서 살아 숨쉬고 있던 트랜스젠더들, 혹은 변태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많은 경우, 익명으로 남아있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가능했겠는가? 어느 유명한 학자는 자신이 거인의 어깨에 서 있다고 했다. 그 거인들도 대체로 유명인이다. 나는, 혹은 나와 유사한 상황에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익명으로 남은 거인의 어깨에 서 있다. 어리석게도 한때 난 거인이 없음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나의 거인들, 내가 어깨를 딛고 서 있는 거인들은 익명이거나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 흩어져있고, 잊혀진 기록 속에서 숨쉬고 있는 거인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가능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모든 연구성과는 이름 없는 거인의 몫이다. 그들의 삶이 있었기에 현재의 연구가 가능하고, 나의 삶이 가능하다.

암튼 이렇게 찾은 자료는 아마도 올 연말이나 내년 초 즈음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고백하자면 이렇게 애써 찾은 자료를 공공아카이브에 내놓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망설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 자료를 찾는데 들인 시간과 자료의 희귀함 때문이다. 현재로선 구할 수 없는 자료들도 많아, 혼자 독점하고 혼자 인용하고 싶은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남들이 출처를 궁금해 하고, 1차 자료를 구하고 싶지만 나만이 소유하고 있는 그런 자료를 독점하고 싶은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가 찾은 자료는 나의 자료가 아니다. 단지 내가 찾은 자료일 뿐이다. 자료는 더 많은 이들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궁극적으론 공유가 내게 이득이다. 하나의 자료를 해석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라, 나 혼자 자료를 독점하고 있으면 한두 가지 아이디어 밖에 안 나온다. 하지만 두 명이 그 자료를 공유한다면 적어도 다섯 가지 아이디어가 나온다. 세 명이 공유한다면 못 해도 서른 가지 아이디어가 나온다. 공유란 그런 거다.

아참. 열심히 기록을 남겼던 이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그나저나 글 좀 쓰지? ;;;;;;;;;;;;;;;;;;;;;;;;;

의외의 발견: 동성애 관련 논문들

예전에 전자사전을 쓰지 말고 종이사전을 사용하란 요지의 글을 읽었다. 이제는 출처도 저자도 다 잊은 글이다. 종이사전을 추천한 이유는 간단한데, 전자사전은 원하는 단어만 찾지만 종이사전은 단어를 찾으려고 페이지를 넘기는 과정에서 의외의 단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나. 의외의 발견에 강조점을 찍은 글이었다. (잠깐 딴 소리하면, 난 전자사전을 쓰지만 종이사전을 더 좋아하는데 종이사전엔 필요한 정보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의외의 발견은 인터넷서점과 오프라인서점 혹은 도서관의 차이기도 하다. 구매를 결정한 책만 검색하는 인터넷서점에선 의외의 발견을 하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나의 습관때문 이겠지). 물론 관련 서적을 제공하는 인터넷서점도 있지만, 그 서비스에 도움을 받은 적은 별로 없으니 생략.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은 다른 듯. 도서관에 가면 도서반납대에 있는 책을 훑어 보는 걸 좋아한다. 내 전공서적이나 관심 도서가 있는 서가에선 대개 예측할 수 있는 책들만 만나지만, 반납대에선 의외의 책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에 구비할 자료를 정리하는 일을 보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고생은 다른 분이 다 했고, 나는 약간의 추가 작업을 하는 정도다. 근데 이런 작업에서도 의외의 발견을 할 수 있어 즐겁다. 정리해야 하는 자료들은 모두 퀴어와 관련 있지만, 퀴어와 관련 있다고 모든 자료에 다 관심 있는 건 아니다. 평소라면 아무래도 조금 더 관심 있는 주제의 책들을 주로 읽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권, 한 권 정리를 하다 보면 평소엔 관심이 없는 주제의 책들도 훑는 기회가 생긴다.

오늘 찾은 의외의 발견은 나치독일의 동성애 탄압과 아리안 민족성 형성의 관계를 다룬 논문이다. 자세히 읽은 건 아니고 논문요약과 목차 정도만 읽었는데 꽤나 흥미롭다. 히틀러 시대에 독일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현재의 범주로 환원해서)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 집시와 같은 이들도 탄압했고 말살정책에 따라 많은 이들을 죽였다. 조일구씨가 쓴 이 논문은 그 자신이 동성애자였던 나치의 한 관리가 남성 동성애자들을 탄압하는 방식으로 독일인의 남성성을 형성하고, 이 과정을 통해 아리안족을 남성의 신체로, 남성다움으로 재현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고 조일구씨가 요약했다). 예전에 한국의 군입대 경험과 국민국가 형성을 탐구한 논문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기에, 동성애 탄압과 아리안족(더 정확하게는 독일 남성성)의 민족성 형성의 관계를 밝히는 논문을 기대하고 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아니 시간 내서 읽어야 할 듯. 근데 이렇게 기대하고 읽었는데 내용이 별로면 어떡하지? ;;;

다른 한 편, 국내에 있는 여러 신학대학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논문이 의외로 많아 놀랐다. 워낙 보수적인 기독교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관련 논의가 없을 줄 알았다. 근데 아카이브에서 소장하고 있는 논문만 13편 정도다! 그 중 몇 편은 대충 읽었는데, 읽다가 박장대소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성서의 맥락에서 동성애를 죄로 여기지 않는 입장과 동성애를 죄로 여기는 입장을 개괄한 후 동성애를 죄로 여기지 않는 입장을 비판한 후 동성애는 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성애자가 아무리 죄인이라해도 그들을 내쳐선 안 되고 감싸고 어떻게든 이성애자로 전향하도록 애써야 한다고 주장하며 적절한 목회상담 방법을 나열한다. 내가 웃었던 건, 이들의 글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어찌나 진지하게 염려해 주시는지 웃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진지한 태도,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심각하게 염려하지만, 그런 태도가 웃기다는 걸 알까? 한 가지 더 웃긴 거. 목차를 훑다가 깜짝 놀랐는데, 상당히 많은 논문들이 목차부터 내용까지 비슷하다. 미묘하게 다르고 대체로 비슷하다. 그래서 첨엔 내가 실수로 같은 논문을 다시 집은 줄 알았다. ㅡ_ㅡ;;

암튼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을 즐기면서. 🙂